궁중무인 처용무에 나라의 안녕과 관용, 치유의 뜻 깊이 새겨

누가 이런 표현을 썼다.

삶이 곡진할수록 말은 어눌하다. 그 깊고 아픈 고난과 좌절, 상처, 분투의 사연을 옮기기에는.

양재문 작가. 그는 우리 전통 춤을 한 걸음 떨어져 찍어왔다. 30년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코로나 역병이 온 나라를 덮치기 전까진 그는 제법 돈벌이도 하는 이름난 작가로 통했다.

2년 간 처용무와 농악과 같은 대작들을 준비해냈고도 가슴앓이만 하고 지냈다.

전시를 못해 아팠던 양 작가를 서울 청담동 루카 511 3층 올리비아 박 갤러리에서 만났다.

'비천몽 나르샤' 전을 이 갤러리에서 올해 말까지 기획 전시한다.

나는 처용무가 궁중무라는 사실을 무식하게도 여기서 처음 들었다.

"1400년 된 춤입니다. 처용무는 나라의 안녕과 관용, 치유의 뜻을 담고 있는 춤이라 궁중무가 된 것 같습니다."

통일신라 때 탄생한 이 춤의 역사는 고려를 거쳐 세종 때 오방색의 다섯가지 '오방 처용무'까지 진화해왔다.

청 홍 황 흑 백, 주역에 나오는 태극과 음양오행설의 이치를 본 떠 장엄하고 활기찬 춤사위를 선보인다.

남자 무용수 5명이 악귀를 쫓고 복을 구하며 수제천(하늘만큼 영원한 생명을 뜻함)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악학궤범에는 음력 섣달 그믐날, 묵은 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나례 때 두 차례에 걸쳐 췄다고 나온다.

다섯 명이 춤사위를 펼치는 오방 처용무에 참여한 악공만 67명이나 됐다.

악기도 가야금 거문고 대금 아쟁 퉁소 해금 등 20여 종이나 많이 나온다.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 때 처용무가 사라졌다가 복원되는 과정에서 처용탈이 원 모습을 잃거나 왜곡되지 않았는지..."

처용탈은 팥죽색 피부에 치아가 하얗고, 납 구슬을 단 주석 귀고리가 달려 있다.

검은 색 사모에는 모란 2송이와 복숭아 열매 7개를 꽂아 각각 진경(기쁜 일로 나아감)과 벽사(잡귀를 물리침)를 상징했다.

"코로나 역병을 이겨내야 할 지금 시대에 맞는 춤입니다. 예술가들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처용춤이라도 덩실 추면서 코로나 극복의지를 다졌으면 합니다."

양 작가는 "시대적 난관을 관용과 포용으로, 신명나는 춤으로 이겨나가고 함께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했다.

작업은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길어도 30분을 넘기지 않는 공연만 하던 무용수들이 장장 7시간 넘게 춤을 췄다.

그러다 보니 무용수들은 가면에 눈만 뚫어놓은 탈과 복장으로 비오듯 땀이 쏟아지는 가운데 참 생고생을 했다.

"다시는 이 촬영작업에는 나오지 않겠다"고 주 무용수가 농반진반으로 말했다고 양작가는 진지하게 전했다.

그의 작품은 당초 무희가 아름답게 추는 한국 전통춤에서 시작됐다. 지가 7대 독자이다보니 그랬을 거다.

-처음엔 여성무를 주로...

"집안 내력이 그렇다보니(웃음). 비천몽 나르샤는 처용무와 농악무가...국난 극복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임했습니다."

-전통춤의 특징을 짧게 소개해 달라.

"돌아설 듯 날아가는 동작과 함께 넓게 휘두르는 소매자락, 종종걸음의 버선코, 치마자락의 흔들림...정말 우리 춤은 아름답습니다."

양 작가는 우리 전통춤의 매력에 깊이 빠져있는 매니아...

"들숨과 날숨으로 풀어내는 춤사위의 절묘한 호흡 속에 살아 숨쉬는 고요함과 역동성 두 단어로..."라는 말을 나는 안다.

-사진이 회화같은 느낌도 준다.

"고대 벽화는 선으로 그어져 평면감을 줍니다. 미켈란젤로 때부터 주변을 흐릿하게

번지게 해서 오히려 도드라지는 입체감을...전통춤 사진은 살랑거리는 치마가 빛을

먹어줘 그런 효과를 냅니다. 멀리서 내 작품을 보면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입니다."

-규방춤 사진이 눈에 띕니다.

"기방에서 추던 규방춤은 교태 그 자체랍니다. 참 단아한 모습에 언뜻 언뜻 내비치는 요염함과 교태가 백미이죠."

양재문 작가는 마치 수묵채색화 같은 농악 사진으로 풍요와 화합을 이야기한다. photo 양재문
양재문 작가는 마치 수묵채색화 같은 농악 사진으로 풍요와 화합을 이야기한다. photo 양재문

-농악무는 다섯개 악기와 함께 추지요.

"(꽹과리) 북 장구 소고 징, 5개의 악기를 무용수들이 연주하면서 추는 게 농악입

니다. 함께한 파주 농악대는 담백하고 소박한 멋이 일품이랍니다."

양재문 작가의 #농악 23 photo 양재문
양재문 작가의 #농악 23 photo 양재문

갤러리에는 축소판이 걸렸지만 필동 작업실에서 길이 4미터, 높이 1.8미터의 대형

판을 본 적이 있다. 민초의 숨결과 맥박이 그대로 느껴졌다.

양재문 작가의 #농악 8 photo 양재문
양재문 작가의 #농악 8 photo 양재문

그 농악무에 참가한 이들의 살아있는 표정을 본 순간 전율이 일었다. 대통령 취임식

이나 외국 국빈 방문 때 걸어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농악무는 김덕수 사물놀이 패와 같이 신명나게 네 가지 악기(소고를 빼기도 함)

연주하는 사물놀이로 진화해 외국사람들의 혼을 빼놓았죠."

우리 전통춤은 무희들이 추는 살풀이나 승무와 같이 처연한 아름다움을 맛보게 하거

나 규방무와 같이 요염한 교태미를 느끼게 한다.

남자 무용수들이 추는 처용무에서는 호방함과 장엄함을, 농악무에선 신명나는 역동

성을 한껏 느끼며 색다른 느낌을 맛볼 수 있다.

왜 우리는 서양음악이나 발레는 가르치면서 우리음악이나 전통춤에는 소홀할까.

번쯤 우리 모두가 반성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너무도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실 생활에서 쓰이는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리 산하의 나무나 들꽃 이름도 가르치지 않는다.

양재문 작가의 전통춤 사랑, 전통춤을 사진 작업으로 되살리려 애쓴 30여 년 세월.

그의 인생 발자취에 경의를 표한다.

양 작가는 올리비아 박 갤러리를 넘어 뉴욕과 유럽 진출도 앞두고 있다.

가장 전통적인 게 가장 보편적인 거다.(Local is the best Global!)

나의 참으로 한심한 말이다. 그러나 들어주시길 부디 바랄 뿐이다.

/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동아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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