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편제의 임권택, "그러면 늦지 않나요?" 무겁게 한마디!
천고법치의 송 도사, '벗이 멀리서 오니 이 또한  기쁘지...'
두 사람의 눈빛, 지켜본 이들 "아!" 라고 감탄할 밖에!

당대 최고의 인물 둘이 역사적으로 만났다!

 

토요일인 17, 임권택 감독님 부부와 우리 부부는 아우 향산 한영용이 모는 차로 충남 보령으로 갔다.

충남 보령시 성주면 개화3리에 내걸린 임권택 감독 환영 플래카드. photo 최영훈
충남 보령시 성주면 개화3리에 내걸린 임권택 감독 환영 플래카드. photo 최영훈

임권택 감독 영화제가 그곳, 월하의 공동묘지에서 열렸다.

 

거기엔 내가 어제 러브샷 후 형으로 모신 임동창과 제자들의 연주와 공연도...

 

아무튼 앞서, 그 행차의 중간 기착지인 볕이 화창한 고을은 꽤 멀었다.

 

밤나무 검사로 세상에 호가 난 꼬장꼬장의 대명사 송종의가 깃들어 사는 써니빌, 충남 논산 양촌 말이다.

 

나는 최영훈의 주()충우돌에서, 천목거사 송 도사님에 관해 열세 번이나 썼다.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천목과 나는 전생에 '사제의 연'이라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대쪽의 옳고, 딱 부러지는 기개가 나는 좋고 펀하다.

 

그런데...

 

천하의 송종의, 피안도(평안도) 대표 송 도사가 고개를  숙였다.

 

서편제만다라의 임권택 감독에게, 어눌한 말투의 그에게 말이다.

 

두 분은 우열을 가릴 수 없게, 내가 뤼스펙트(Respect) 한다.

 

송 도사는 나를 꾸짖을 대한민국의 단 한 명, 아니 한 명 더 있나?

 

대한민국 최영훈이라 공갈치고 다니는 나를 감히 머라꼬 할...

 

귀신도 범접을 싫어할 해탈 송 도사가 머리를 잠시나마 조아렸다?

 

송 도사를 아는 겐지 후배들은 잘 납득이 잘 안 갈 거다.

 

둘의 첫 상봉, 그 초절정 초식들에 내가 그만 울컥했을 정도니!

 

두 분이 첫 상면을 한 천고법치문화재단의 2층 사무실.

천목헌, 송 도사님(오른쪽)이 임권택 감독(왼쪽)께 '밤나무 검사의 음악 편지' 증정, 손자 지우에게 선물로. 임 감독은 뜻밖에를 연발하며.. photo 최영훈
천목헌, 송 도사님(오른쪽)이 임권택 감독(왼쪽)께 '밤나무 검사의 음악 편지' 증정, 손자 지우에게 선물로. 임 감독은 뜻밖에를 연발하며.. photo 최영훈

두 고수가 일합을 겨루기 전, 화기애애한 그 현장에 있었는데 아직도 감동이다.

 

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논어 맨 앞 글로 '하늘 눈' 송 도사는 서편제의 임 감독을 반겼다.

 

그를 보자말자 대뜸 감독님이 남기신 불후의 명작, 서편제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역시 고수답다는...'

 

30여 년 전, 송 도사가 서울지검장? 아님 대검 형사강력부장?

 

그 무렵, S대 다니는 딸 손을 잡고 모처럼 송 도사가 애비 노릇했다.

 

'그기 머시라꼬?'

 

바로 국도? 아님 대한? 어디선가 상영한 바로 그 대단한 영화.

영화 서편제 포스터 photo 나무위키
영화 서편제 포스터 photo 나무위키

이태원영화사 제작의 임권택 감독 표 최고의 명작 서편제!

 

그 명작을 보고, 당시 송 도사는 임권택이 누군지 궁금했다.

 

그리고 세상이 몇 번 바뀐 뒤에야 애제자 최 도사 덕분에...

 

임권택과 첫 상봉, 그 궁금함을 마침내 풀 수 있었다

 

이 글은 내가 송 도사께서 마련해주신 랩탑으로 마무리하련다.

 

한 세 번에 걸쳐...

 

그만큼 당대 최고의, 법과 영화라는 두 이질의 세계가 만나 통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까지 하는 그 엄숙함에 대해...

 

이만 줄인다. 오늘 밤에 2탄을...

 

내가 왜 울컥했는지, 생생하게 마치 영화라도 보는 듯 귀신같이 묘사해줄 테니.

 

이만 총총.(계속)

 

#뱀발...임과 송, 두 거장(巨匠)

 

1. 동아일보가 21년 전 일민상인촌의 장자, 을 수여했다. 그때 누군가의 인물평 기사.

 

'한국인혹은 한국적 정서와 가장 가까운 영화감독. 일민문화재단과 동아일보사는 매년 문화예술인 한 명에게 시상하는 일민예술상(95년 제정)2001년 수상자로 임권택 감독(66)을 선정해 119일 시상식을 가졌다.

 

임권택은 호적에는 36년 생, 실제는 34년 생이다.

 

부인(채혜숙씨)과 함께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시상식에 참석한 임 감독은 “62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한 지 꼭 40년 되는 해에 이런 큰 상을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임권택 감독은 만다라’ ‘길소뜸’ ‘서편제’ ‘춘향뎐등 우리 민족의 정과 한을 잘 표현한 작품들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정서를 일깨우고 세계 속에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다며 임 감독의 공로를 치하했다.

 

현재 조선 말의 천재화가 장승업의 삶을 그린 신작 취화선을 촬영 중인 임 감독은 이날 하루 촬영을 미루고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는 안성기 박중훈 최민식 등 배우들을 비롯한 영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수상을 축하했고, ‘서편제의 배우 오정해는 판소리 축하공연으로 대감독의 수상을 축하했다.

 

나도 한때는 할리우드 영화의 아류 같은 영화들을 찍었지요. 그러나 한국인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우리의 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작 취화선을 통해 한국화가 가진 여백의 미와 유려한 필치를 한껏 살리겠다며 젊은 감독 못지않은 패기를 과시하는 임 감독.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지구촌이라는 커다란 화원에 꽃을 피우고 싶다.”

 

2,  천목거사 송종의

 

송종의(1941년 생평안도 중화)는 대한민국의 검사였다.

 

YS 정부 후반기에 장관급 법제처장을 지낸 바 있다.

 

당근 검찰총장이나 법무부장관 감.

 

박근혜 집권 초후반에 두어 차례 국무총리 제의를...

 

때를, 천시를 아시니 정중하게 거절한 바 있다.

 

지금 법률신문(대표 이수형)'못난 송종의 자전(自傳)'을 연재 중이다.

 

12월이 되기 전, 그 회고록의 끝이 날 거다.

 

그 자전에는 검사 때 모자람실패담, (미화자찬 일색인 야바위 회고록들관 천양지차)  많다.

 

서울지검장 때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꾸짖으며 아낀 바 있다.

 

럭비공 홍또는 송도사 아니었으면 슬롯머신 수사를 끝내지 몬했다.

 

그것을 지가 다 한 것처럼 약을 팔고 다녔지만 훌륭한 두 명(나머지 한 분은 유창종 강력부장송 도사가 유 대사라 칭한다), 상사 덕에 힘입었다.

 

각설!

 

법제처장에서 물러난 후, 일체의 전관예우를 물리쳤다.

 

바로 논산 양촌으로 내려가 밤농사부터 시작했다.

 

논산 지역에서 발을 뗀 검사직 수행 중 민둥산 국유림 3곳을 임대해 가능한 범위에서 산림녹화에 정진했다.

 

그리고 밤과 딸기를 1차 가공하는 기업, 써니빌영농조합으로 키워 지역 농민들을 위한다.

 

밤과 딸기 농사, 아니 주로 딸기를 1차 가공해 오뚜기 대상에 잼 원료로 납품한다.

한때 바깥으로 수백 만 달러를 수출해 수출역군에게 주는 포상도...

 

2015년에는 법을 아끼고 지킨, 귀감이 될 만할 후배 법조인을 상찬하기 위해 천고법치문화재단을 설립해 유일하게 감투를 스스로 썼다.

 

그 이사장이다.

 

검사 시절 법무부 법무과장, 서울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 전주지검 차장검사, 부산지검 제1차장검사,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찰청 형사2부장(강력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서울지검장,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지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제20 법제처장을 역임했다

 

벼슬길을 떠난 뒤, 두어 차례 국무총리 제안도 일언지하에...

 

진퇴나 사생관이 그만큼 확실한 이도 없을 거다.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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