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독일 런던 도쿄가...사랑한 천재 시리즈 작가!
'조성관의 GENIUS TABLE 2', 3강 스메타나 강평!

천재 작가 조성관.

조성관 작가 photo 조성관
조성관 작가 photo 조성관

그는 조선일보에서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월간조선에서 조갑제 편집장에게 훈련과 지도를 받았다.

 

잔뼈가 월간지에서 굵은, 잡지 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전업 작가로 변신해 성공했다.

 

그러나, 쳐 죽일 코로나로 강연수입이 끊겨 한동안 고생했다.

 

그러다가 벗 봉욱, 대검 차장 출신,의 아이디어로 천재들을 소재로 강연하는 1인 기업을 차렸다.

 

강연에 불러 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직접 점방을 차려 사람을 부르는 거다.

지니어스 2기 3강 스메타나 안내문 photo 조성관
지니어스 2기 3강 스메타나 안내문 photo 조성관

이곳의 '지니어스 2' 강연을 듣는 면면들이 호화롭다.

 

김진선 전 강원지사도 보이고, 검찰총장 후보로 윤석열 대통령과 각축한 봉욱 전 대검차장, 내가 애정하는 권리안 대표, 금호미쓰이화학 온용현 사장, 이병호 신한금융그룹 브랜드전략본부장, 최태은 에이씨티 그룹회장 등등.

 

언론사에 있을 때, 아마 20여 년 전 나는 그와 우연히 마주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아니 몇 년 전 그와 재회했을 때 그가 전했다.

 

'최영훈의 주()충우돌''산 베고 누운 구름', '주정의 목불인견', '단디 도사의 페북 읽기' 등을 내가 연재하는 미디어빌 대표 박영철, 역시 조선일보 출신, 소개로 만난 바 있다.

 

그래서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와 미모의 여성 사업가 두 분이 함께해 가끔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는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에 대해 상찬을 해주곤 한다.

 

내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덕분에 글에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부러워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별로 준비를 하지 않는 편이다.

 

10여 분 멈춰 숨을 고른 뒤 1감이 시킨 집필 방향대로 간다.

 

의식의 흐름, 주취에 따라 드물게 극과 극을 달리기도,에 맡긴다.

 

그는 글을 쓸 때 사전 취재를 많이 하고 두려움을 갖고 쓴다고 했다.

 

그만큼 붓방아를 많이 찧고, 자료수집 및 정리 후 집필에 들어간다.

 

아마 그가 준비를 많이 해 긴 글을 쓰는 잡지기자 출신인 탓이리라.

 

신문 기자인 나는 그와는 정반대일 거다.

 

대단히 높은 명사와의 인터뷰를 제외하곤 나는 준비를 하지 않는다.

 

나도 조성관도 박람강기(博覽强記)과일 거다.

 

나는 마당발 인맥에 사람 사랑까지 겹쳐 무수히 많은 이들을 안다.

 

정치 법조 문화 예술 건달계까지 오만 떼만 이들을 다 알다보니 그들에게 듣고 입력한 실전형 지식이 많다

 

반면 성관은 발품을 팔아 취재를 하고 자료를 수집해 정리한 지식들이다.

 

직관형에 운문형인 게 나라면, 성관은 논리적 산문적이라고나 할까?

 

어제 나는 성관의 초대를 받아 강남의 특급호텔에서 호사를 누렸다.

 

비싼 밥(한끼 10만원쯤?)을 먹으며 그의 스메타나 강의를 들었다.

 

내 옆에는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설계한 종합건축사사무소이공(다를 이, 빌 공) 류춘수 회장과 미모의 피아니스트가 앉았다.

류춘수 회장 photo 뉴시스
류춘수 회장 photo 뉴시스

류 회장은 경북 봉화 생으로 역시 박람강기 형이었다.

 

특기할 건, 엘리자베스 2세 부군인 고 필립공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2번 만났단다.

 

필립공이 516일을 비롯해 4개의 날을 제안하며 택일의 권한을 넘겼다.

 

그는 박정희를 사모하고 뤼스펙트 한 탓에 5·16을 꼽았다고 했다.

 

교양인인 생전의 필립공이 아티스트를  존중한 것이리라.

 

건축을 뜻하는 영어 아키텍춰(Arkitecture), 예술을 뜻하는 아트와 테크닉의 합성어임을 난 어제사 알았다.

 

당근 옆에 앉은 류 회장님 덕분에...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다보니, 아는 사람 중 겹치는 이가...

 

김경한 전 법무장관이 공통의 인물로 화제에 올랐다.

 

김 장관은 문학청년이었을 거다.

 

올해 초 펴낸 저서에서 사모곡 등 소재들을 맛깔나게 요리했다.

 

소싯적, 글깨나 써보지 않았다면 이를 수 없는 수준의 글재주다.

 

김경한이 류춘수에게 "책 제목을 정해 달라"고 청했다.

 

그때 그가 지어준 이름이 바로 '()join이야기'였다.

 

참으로 기발하기 짝이 없다.

 

한자와 영어, 한글이 공존하는 책 제목을 보내준 거다.

 

아쉽게도, 채택은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비범한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명이다.

 

이공, 역시 다를 ''라는 뜻 외에 이색적이라는 용법에선 뛰어남도 함축한다.

 

좋은 경우에만 이색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법이니.

 

이인(異人)도 뭔가 특별한 재주나 인품이 있는 경우에만 쓴다.

 

이공의 영어 뜻풀이가 참으로 절묘하다.

 

'BEYOND SPACE', 영어가 더 쏙 들어온다.

 

그 회사가 지향하는 바의 목표(Goal)...

 

각설...삼천포로 가던 발길을 돌려 본론인 스메타나로 가자.

 

나도 스메타나와는 쬐깨 인연이 있다.

스메타나 photo 네이버지식백과
스메타나 photo 네이버지식백과

보헤미안 출신의 위대한 음악가로서...

 

아들이 어릴 때 방문에 단 그네를 타면서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을 틀어주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런 추억의 교향시, 작곡가인 스메타나의 삶의 역정을 성관이 씨줄 날줄로 엮어 일목요연하게 천재적으로 강의했다.

 

그는 파리(프랑스) 독일 도쿄(일본) 서울이 사랑한 천재라는 제목들로 10여 권의 국내외 천재 시리즈를 펴냈다.

 

천재 이어령 선생은 조성관의 인품과 자질을 아꼈다.

 

그는 어제 메리어트 호텔의 삼품냉채와 홍소 게살 스프, 전복 관자 아스파라거스 볶음, 바질 새우, 어향 미국산 쇠고기 안심, 야채볶음밥, ...

 

그 요리 코스 안내문에, 자리한 20여 명의 이름과 사인을 적게 했다.

요리 코스 안내문에 적힌 참석자 이름과 사인. photo 조성관
요리 코스 안내문에 적힌 참석자 이름과 사인. photo 조성관

고 민관식 장관에게 배운 '삶의 기록 남기기' 일환이다.

 

이런 하나 둘이야 별 거 아니지만 몇십 년 쌓이면 역사의 기록이다.

 

세계사니 민족사니, 그런 큰 틀만 중요한 게 아니다.

 

미시사(微視史), 생활사라는 역사를 망원경이 아니라 현미경으로 보는 작업이 각광을 받는 세상이다.   

성관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하다.

 

여행을 좋아하고, 클래식 애호가에 영화 마니아이기도 하다.

 

그가 씨줄 날줄을 풀어가는 과정에선 늘 인문기행의 주옥같은 지식들이 등장한다.

 

그곳과 연계된 영화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인문학적 지식과 클래식 그림 건축 등도 주요한 소품들...

 

어제 스메타나 때는 영화 '새벽의 7'이 등장했다.

 

이것을 소재로 한 영화가 두 편이나 더 있었다니...

 

참 아는 것도 많은 친구로구나!

 

나는 그보다 신문사를 한 1, 2년 빨리 들어왔다.

 

두 살 쯤 위다. 그는 연세대 영문학과를 다녔다.

 

깍듯하게 선배 대접을 해주지만 마음의 벗이다.

 

그는 뉴스1에서 세계인문여행이라는 문패로 글을 연재한다.

 

그가 글을 쓰는 패턴은 정해져 있다.

 

가까운 일상에서 시작해 박람강기한 해외 취재를 연결한다.

 

그리고 영화 얘기로 양념을 치고, 클래식이든 인문교양이든 채소를 넣어 비빈다.

 

이어령이 '비빔밥 얘기'를 절묘하게 갈파했듯이...

 

이어령 천재는 '보자기론'도 펴 한국의 깊이를 세계로 알렸다.

 

뭔가를 하나로 쌀 수 있어야 그것을 흘리지 않고 잘 전달할 수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잘 꿰어야 보배이듯이 말이다.

 

나도 천재 연()하지만 이어령에 비하면 족탈불급이다.

 

문득, 가을이 성큼 다가온듯 서늘한 신새벽에 이어령 선생이 기립다.

 

스메타나의 불우한 만년, '부끄러운 사인'(shamefull reason)에 관한 성관의 설명이 뇌리에 선연히 남는다.

 

체코 수도 프라하에는 스메타나의 흔적이 도처에 있다.

 

프라하에 2번이나 가보고도 나의 무지와 무식한 가이드들 탓에...

 

스메타나의 흔적을 한번도 단디 되새겨 본 적이 없다.

 

가이드 중 스메타나를 언급한 이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내가 딴 생각에 사로잡혀 별거 아닌 걸로 흘렸을 거다.

 

간밤에 마셔댄 필스너(필센) 맥주의 취기로 잊어버렸던지...

 

그가 뉴스1에 쓴 글 몇 편을 보자.

 

'서울 사직공원 운동장에 동상 두 기()가 있다.

 

회사를 다닐 때 점심을 먹고 여러 번 사직공원을 산책한 적이 있다.

 

한번은 이 동상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금방 감상을 포기했다.

 

조형물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기단이 너무 높아 동상을 보려면 고개를 치켜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동상과의 교감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일까.

 

동상 뒷면의 인물 소개글을 찬찬히 읽었지만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러다가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헤르만 헤세(1877~1962)의 고향은 독일 남부 소도시 칼브(Calw).

 

헤세는 열여덟 살까지 고향에서 살다가 작가가 되기 위해 칼브를 떠났다.

 

이후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스위스에서 눈을 감았다.

 

칼브는 헤세의 도시다.

 

어디서나 헤세가 발길에 채인다.

 

헤세 생가, 헤세 광장, 헤세 분수, 헤세 정원, 헤세 박물관 하는 식이다.

 

심지어는 식당 접시에도 헤세의 얼굴이 나온다...'

 

다른 글도 마찬가지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류춘수 종합건축사사무소이공 회장의 반가사유상 스케치 photo 최영훈
류춘수 종합건축사사무소이공 회장의 반가사유상 스케치 photo 최영훈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두 점을 완상하려는 사람들이다.

 

평일 오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지인 중에는 반가사유상 사진을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쓰는 사람이 여러 명 된다

'사유의 방'을 설계한 사람은 건축가 최욱이다.

 

최욱이 신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관객이 무대에 선 배우를 속눈썹 떨림까지 볼 수 있는 거리가 소극장 규모인 24m인 것을 고려해 공간을 디자인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올려다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높이를 설정했다."

 

나는 일부러 손님이 가장 없을 것 같은 시간대인 평일 오전을 택했다.

 

그런데도 '사유의 방'을 찾는 관람객이 앞뒤를 이었다.

 

금발의 외국 여성도 반가사유상 두 점의 표정과 뒷모습과 옆모습을 천천히 관찰하고 있었다.  

 

모든 전시물은 관람객과의 소통을 목표로 한다.

 

왜 관람객은 반가사유상에 감동하는가.

 

일단 작품의 예술성이 뛰어나야 한다.

 

다음은 예술성을 돋보이게 배치 전시해야 한다.

 

그 핵심이 바로 눈높이다.

 

'고개를 들지 않고 올려다볼 수 있는 가장 편안한 높이.'

 

성인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거리를 좁혀 예술품을 전시했을 때 교감의 밀도가 높아진다.

 

반가사유상 두 점을 보고 나면 입꼬리에 걸린 신비로운 미소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까닭이다.'

 

그리고는 영화로 달려간다.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포스터 photo 네이버영화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포스터 photo 네이버영화

미식 축구(American football). 미국인과 정서적 장벽을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다.

 

미국에서 시작된 메이저리그(MLB)와 미국프로농구(NBA)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프로풋볼(NFL)은 여전히 대중과 좁힐 수 없는 거리감 같은 게 존재한다.

 

미국에서 야구 영화 못지않게 자주 영화로 만들어지는 게 풋볼 영화다.

 

풋볼과 관련된 속담도 여러 개다.

 

대표적인 게 '먼데이 모닝 쿼터백'(Monday morning Quarterback). 풋볼 경기는 월요일에는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쿼터백?

 

상황이 종료된 다음 뒷북을 치는 것을 의미한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내가 두 번 본 영화가 있다.

 

샌드라 불럭이 주연한 2009년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

 

이 영화는 미식축구 선수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나도 울컥하는 감동과 함께 본 일이 있다.

 

예쁜 샌드라가 양애미로 피부색이 다른 아들을 위해 노심초사를...

 

마음씨까지 예쁘고 슬기로운 우리의 샌드라를 마음에 새겼다.

 

스메타나의 이름을 딴 곳이 프라하에 있다.

 

바로, 나의 조국 6편 중 두 번째인 블타바 강둑에서다.

 

그곳의 국립극장에서 어디까지가 바로 스메타나 강둑이다.

 

드보자크, 야나체크, 베네쉬 등의 이름을 딴 블타바 강둑 구간들.

 

우리도 한강을 그렇게 이름 지을 순 없는가?

 

정지용 강둑, 홍난파 강둑, 이어령 강둑...

 

정지용은 사회주의라 홍난파는 친일이라 안된다 지랄하겠지...

 

스메타나는 프라하 2'케 카로브' 11의 정신병원에서 숨진다.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곡기를 끊고 맥주와 와인만 마시다 갔다.

 

술을 즐기지 않는 성관이 짓궂게 나를 안주 삼는다.

 

"최 국장님은 맥주와 와인만 마신 스메타나가 이해가 되지요^^"라고 말이다.

 

두 시간 강의가 쏜살처럼 흘러 대단원에 이르렀다.

 

강의의 끝에 애잔한 블타바의 음률을 그가 들려준다.

 

30년 전, 우리 아들이 그네를 타며 즐겨 듣곤하던 곡조가 귓전에 메아리친다.

 

스메타나를 낳은 프란치세크는 핀쎈 맥주 회사 사장.

 

스메타나는 양조장 집, 우리도 거기도 다 부자이니 부잣집 엄친아다.

 

3번째 부인이 3번째 낳은 유일한 아들, 딸만 내리 아홉을 놓다가 막판, 이다.

 

베드지히 스메타나는 죽기 10년 전, 1874년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다.

 

악성(樂聖) 베토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나의 조국은 그런 악조건 속에 188211월에 완성돼 초연한다.

 

그는 귀가 안 들리자 국립극장 상임지휘자 등 공식활동을 중단한다.

 

1874년 여름 1'비셰흐라트'를 작곡하고 크리스마스 직전 불후의 명곡인 2'블타바'를 완성한다.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에서 3'샤르카', 1879년 마지막인 6'블라니크'까지 마친다.

그는 나의 조국을 프라하에 헌정한다.

 

얀 후스라는 의인(義人)은 중세 가톨릭의 면죄부 매관매직에 저항한다.

 

그리고 전향을 하면 살려준다는 걸 끝내 거부하고 마침내 화형당한다.

 

잿더미로 변한 유해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프라하로 가져와 알린다.

 

그것이 '프라하의 봄'을 비롯해, 나치 점령하에서 불굴의 투쟁 정신을 발휘한 보헤미안 정신의 에스프리다.

 

만년의 스메타나, 청각을 잃고 얀 후스로 귀의한 거다.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얀 후스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해 프라하 구 시가의 한복판에 동상이 세워졌다.

 

교황에게 파문당하고 콘스탄츠 공회에 소환당해 끝내 절명한 얀 후스의 순절(殉節).

 

그는 보헤미안의 정신적 지주로 청사에 길이 남았다.

 

그 정신의 예술적 완성이 '나의 조국'일 거다.  

 

이만 총총.(계속)

책 '파리가 사랑한 사람들' 표지 photo 예스24
책 '파리가 사랑한 사람들' 표지 photo 예스24

#뱀발,,,파리가 사랑한 천재들

 

빅토르 위고를 그는 제일 좋아한 것 같다.

 

무소속으로 배지를 달고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반동의 왕정...

 

망명지에서 써내려 간 게 '레미제라블'이라고 했다.

 

작가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

 

"이탈리아에 단테가 있고,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는 괴테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위고가 있다."

 

그는 파리에는 워낙 인물이 많아 문인편과 예술인편으로 나눌 생각까지...

 

천재 작가도 천재일까?

 

나는 그게 늘 의문이었다^^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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