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의 초중반 중3 시절>

 

내면적으로는 에로스의 격동이 시작된 중2 시절이 저물면서 점점 무르익는 중3 시절에 접어들었다. 3-8반에 배치된 것 같고 담임은 일반사회 담당의 전병호 선생이었다.이 양반은 부산여중에서 오래 근무하다 경남중으로 전근해 왔기에 학우들이 좋아하는 여중에서 겪은 여러 일화들을 군데군데 섞어가며 수업을 진행해 인기가 꽤 많았다.

 

국어 선생은 옆반 담임이었던 조달곤 선생으로 여겨지는데 이 양반 수업이 그런대로 기억에 남는다. 특히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1953)를 다룰 때가 압권이었다. 내게는 이 소설이 사춘기 소년 소녀의 조심스러운 사랑놀이를 그 어떤 익사이팅한 불꽃 스파크도 없이 미니멀리즘적 기술(記述)로서만 다루었던 듯해, 두 사람의 내면적 심리들을 주위의 정황 묘사를 통해 짐작만 되게 했을 뿐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기에 당시에는 좀 심심해 성에 차지 않았다.

황순원-소나기의 명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채색도. photo 김재민
황순원-소나기의 명장면들을 연상케 하는 채색도. photo 김재민

하지만 그 간접적 묘사 속에서 한 사춘기 시골 소년이 자신의 동네로 내려온 약간 신비스러운 또래 도시 소녀에게 바치는 달뜬 감정을 개울 건널 때 업어주고, 소나기 내리는 원두막에서 비 피하게 해주려 자신은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수숫단을 만들어 바치는 장면들로 탁월하게 형상화시킨 것이 이 소설의 명작성이란 것을 그 당시는 제대로 알 리가 없었다.

 

전병호 선생의 일반사회 과목에서는 고교시절 권남술 선생에게서 반복되는 정치 및 행정 체제와 경제일반을 배웠던 것 같고, 물상시간에 뿔테 안경 쓴 선생으로부터는 빛의 굴절이니 천체의 구조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름만 전해들었다. 이 양반이 진도에 쫓기지 않고 상대성 이론에 대한 주요 개념들과 과학사에 끼친 영향들도 자신이 공부 좀 더 해와 전해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크다.

 

하지만 강석진 선생이 진행한 생물시간에 대한 인상은 강렬했다. 의사들처럼 하얀 가운을 입고 와서 수업한 강 선생은 2학년 땐가 동물의 혈액이 응고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실험실에 생닭을 한 마리 준비해와 메스로 닭의 입천정을 긁어서 나오는 검붉은 피를 비이커에 담고, 가위로 닭목을 자르는 시범으로 나를 비롯한 여러 꼬맹이들의 비윗장을 뒤집는 실습장 체험이 지금도 끔찍하게 머리에 남아 있다.

 

그 이후 난 피에 대한 공포증으로 지금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피칠갑의 수술 장면은 트라우마처럼 보지 못하며, 병원에서 채혈을 할 때도 간호사들이 팔뚝 혈관에 꽂는 주사바늘을 응시하며 쳐다본 적이 없다. 문디 영감, 왜 그리 리얼하게 수업을 진행하여 비위 약한 어린 친구들이 평생 피하는 추억 한 조각을 남겨줬을꼬 했다.

 

하지만 3학년 때 강 선생으로부터 배운 멘델법칙이나 혈액형에 대한 특징, 다윈의 진화론과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등은 고교 올라가서도 잘 써먹었을 만큼 과학과목 중에서는 가장 인상에 남았다.

 

가을로 접어들며 중3 시절의 마지막 가을 수학여행을 부산에서 배 타고 한려수도로 충무까지 가서 한산도 이순신 장군 영정 사당을 둘러보고 오는 코스가 있었다. 돌아오는 선상에서 아이들에 무작스레 손찌검 잘하는 걸로 악명 높은 3-5반인가 담임 진용O 물상담당 선생이 모처럼 아그들 하고 어울린답시고 고스톱인가 섯다 하는 판에 끼어들었다.

한려수도를 처음 접하게 해준 중3 때 선상여행. photo 김재민
한려수도를 처음 접하게 해준 중3 때 선상여행. photo 김재민

패를 돌리다가 마침 그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니 요거 뭐 요런 가시나처럼 예쁘장한 놈이 다 있노?’ 함시롱 사람들 앞에서 히야카시 날리던 기억도 떠오른다. 내면에는 여체 탐구욕으로 이글거리는 이 작은 악마님을 요 멍청이가 어따 대고 먹고 싶은 가시나같다니 속으로 같잖아서 헛웃음이 다 났다.

 

<고교 입시 총정리와 아슬했던 합격>

 

여행 이후 우리 모두는 경남고 입시에 각자의 공부방식으로 매진했다. 입시 한 달을 앞두고는 서대신동 대티터널 앞 어느 집에서 각 학원가의 유명 강사들이 모여 자기 전공의 총정리 과외를 한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다.

 

일반사회를 담당하던 어느 선생으로부터 슘페터란 경제학자와 그의 창조적 파괴에 대한 설명을 들은 기억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몸 붙이고 있는 경성대에서 기업가 정신에 관한 강의를 할 때에도 잘 써먹을 정도이다.

고입 준비 와중에도 큰 인상을 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1883~1950) photo 김재민
고입 준비 와중에도 큰 인상을 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1883~1950) photo 김재민

경남고 입시는 중학 때와는 달리 1월 중순에 행해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부친모친과 주위 친구들은 당연지사 내가 될 것으로 꽉 믿고 있는 게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나도 내 자신을 믿어보자 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각 과목 시험을 치루며 입시 당일을 보냈다. 그 다음날의 체력장 시험도 100미터 달리기에서 13초 중반대 기록을 끊었을 정도로 전체 무난하게 치렀다.

 

그런데 필기고사에 대해 어느 신문사가 제공한 답안과 비교해 보니 이게 웬일인가. 오답 개수가 근 60개에 육박했다. , 이러면 거의 떨어지는 수준이라는 느낌이 바로 왔다. 엄청난 재앙 앞에 내몰리는 심정으로 경남학원에 들러 여기서 제시하는 답안으로 다시 계산해 보니 다행히도 52개선으로 줄어들었다.

아득한 기억 속의 경남고 덕형관 photo 김재민
아득한 기억 속의 경남고 덕형관 photo 김재민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안도감 속에서도 그날 밤을 거의 설친 채 다음 날 아침 일찍 경남고 게시판 앞으로 두근거리는 심정 속에 찾아갔다. 가서 보니 내 수험번호가 떡하니 올려져 있지 않은가. (이름도 같이 적혀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밤새 뒤척거리며 떨어졌을 때의 생각하기 싫었던 상황들이 이제사 멀리 사라졌음을 알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모친에게 내 번호 있다고 전화로 알려주니 자신은 사실 걱정 하나도 안했다고 좀 밉살스러울 정도로 태평스레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가식의 여왕처럼..). 아무튼 용궁에서 살아 돌아온 토끼의 심정으로 합격의 달달함을 즐기면서 3월 입학식 때까지의 한 달 반을 영화관 순례와 친척집 방문, 그리고 영해 외가를 혼자 방문해 또래 사촌들과 함께 머문 2~3주간의 체류로써 이 시기를 보내었다.

 

<69년에 발생한 국내외 주요 사건>

 

1.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성공

 

‘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유인 우주선의 선제발사 성공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미국은 케네디의 선거공약에서처럼 전 국력을 동원하여 NASA를 통한 우주탐사 경쟁에 돌입했다. 소련의 소유즈 계획과 미국의 제미니, 아폴로 계획의 각축 속에 69720일 아폴로 11호는 인류역사에서 최초의 월면 착륙과 탐사를 성공적으로 행했다.

달에 연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 photo 김재민
달에 연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 photo 김재민

나는 이 초유의 광경을 이날 아침 6~7시 사이 우리집 TV에서 방영되는 실황중계로 생생하게 시청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비록 이 방영이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실내 스튜디오에서 조작 촬영된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음모론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상황을 참작하고서라도 말이다.

 

2. 닉슨 독트린 선언

 

6811월 존슨 후임으로 당선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69725일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서서히 손을 뗄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국들에도 군사적 직접지원보다 경제적 간접지원과 아시아국들 간의 집단적 동맹체제 수립을 지원하는 등을 골자로 하는 동아시아 외교정책 노선을 발표했다.

주한미군 감축을 예고한 닉슨 독트린(1969/7) photo 김재민
주한미군 감축을 예고한 닉슨 독트린(1969/7) photo 김재민

이를 닉슨 독트린이라 하는데 2차대전 후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체제가 종식됨을 의미하며 세계경찰로서의 미국 역할을 아시아권에서는 크게 포기한다는 역사적 선언이었다. 이는 베트남전으로 무너진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를 국내용으로 재조정할 필요 속에 행해졌는데, 한미동맹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쳐 후일 주한미군 2사단이 철군하는 계기가 되었다.

 

3. 박정희의 3선 개헌 시도와 가결

 

‘68년 총선에서 온갖 부정선거로 국회의원 총수의 70% 이상을 확보한 집권 공화당은 ’691월부터 박통의 3선을 위한 개헌의 불가피함을 공화당 고위 당료들을 통해 흘리며 여론을 떠보는 행보를 시작했다. 야당인 신민당은 40여 석의 의석으로 이런 시도에 결사반대한다는 강력한 방어전략을 펼쳤지만, 쪽수 부족으로 10월에 군사작전 하듯 전격적인 투표놀음을 실시한 여권의 파렴치한 개헌안 통과를 참담하게 지켜만 봐야 했다.

날치기 통과된 3선 개헌안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photo 김재민
날치기 통과된 3선 개헌안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photo 김재민

내 기억으로는 이 날치기 가결작전을 주도한 공화당 총무는 김택수(1) 의원이고, 저지 선봉장인 신민당 총무는 김영삼(3) 의원이었다. 3년 전 새누리당의 경남중고 출신 김무성과 새민주당 문재인 구도의 원조처럼 여겨졌다. 확실한 의원 총수 2/3를 확보하기 위해 김형욱이 이끄는 중앙정보부의 공작으로 신민당 의원 3명도 매수되어 찬성파로 돌았다. 그중 하나가 토성동 시절 동네 친구 성모의 부친 성낙현 의원이었다.

 

<특히 기억나는 중3 생활>

 

이 해 여름 우리 부친이 자신의 부서팀 남녀 부하직원들과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단체 야유회를 갔을 때 거기에 끼어 나만 야매로 따라간 적이 있었다. 부친은 팀장인지라 주위에 남녀 부하직원들을 양 옆에 거느리고 맥주잔을 돌리면서 일본 엔카만 불렀다.당시 청와대 안가에서 박통이 졸개들 데려놓고 놀 때 자신의 일본어 능력과 일본 취향을 과시하려 왜가요를 자주 부른다는 세간의 소문을 어디선가 들었는지 좀 아니다 싶었는데도 그대로 따라 연출하는 듯했다.

 

나중에 찍은 단체 사진과 스냅 사진들을 보니 몇몇 여직원들은 부친의 연애 파트너가 되었지 싶은 혐의가, 그 몇 년 후 다른 사건들에서 마주쳤을 때 제법 짙게 느껴졌다.아무튼 그 여직원들이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나를 자기 보스 장남이라고 거기서도 제법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나는 그 여인들이 늘씬한 수영복을 입고 저그끼리 모여 수다 떨며 놀면서도 나를 숙맥이 아이 취급하며 거리낌 없이 끼워준 게 몹시 고마운 추억으로 남는다.

중3 때 경남중 29회인 남동생, 아직 왈가닥이었던 초등 여동생과 집에서 photo 김재민
중3 때 경남중 29회인 남동생, 아직 왈가닥이었던 초등 여동생과 집에서 photo 김재민

안 그래도 여체 상상만 수백 번도 더 하던 내 앞에 수영복 입은 여인들이 실체로 나타나 누나 연하며 곱상한 페티 하나 나타났다고 먹을 것 마실 것 갖다주며 이런저런 말을 거는 데 대해 얼떨떨한 바보 행세를 하면서도 얼마나 꼴렸는지는 그 언니들이 아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긴다. 아무튼 ‘69년 여름의 최고 추억이었다.

 

3 시절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기억은 중1, 2때와는 달리 희한하게도 거의 또렷하지 않다. 내 옆에 앉은 짝꿍이 누군지, 반장이 누구였는지, 오래 학창시간을 같이했다는 박상국이가 같은 반이었는지조차도 잘 모르겠다. 기억력 총기가 예전보다 확연히 떨어진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냥 장기남이가 전 학년 규율부장을 하며 한번씩 모타리 작은 3학년생들 우습게 보는 행동을 한 2학년 삐딱이 덩치들을 본보기로 우리 교실에 몇 명 데리고 와 훈계와 함께 뺨따귀 몇 대씩 때라는 광경만 생각날 뿐이다. 이 친구가 동급생 학우들 앞에서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했겠지만, 다른 한편 꼬맹이 약자들의 학교 내 위계 포지션을 확실히 보호해 주는 정의의 수호자 엉클 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 이외 학우들과의 관계나 여타 연관된 사건들이 그리 크게 떠오르지 않는 걸 봐서는 그 당시 나만의 내면 색계여행이 어지간히도 계속되며 깊숙했던 모양이다.

 

그런 중에도 또 하나 머리에 남는 기억은 동대신동에 있던 조용수 집에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놀러갔는데 저그 형의 책인 듯한 독일어 교과서와 참고서를 처음 만난 것이다. 영어 외의 알파벳으로 기술된 외국어 책은 처음 보는지라 아주 흥미로웠다. 문법이나 단어도 비슷한 점이 많아 고교 들어가면 무조건 불어가 아닌 독어를 선택하리라 결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순간이었다.

60년대 중반 공전의 인기를 모은 미국 드라마 '전투' photo 김재민
60년대 중반 공전의 인기를 모은 미국 드라마 '전투' photo 김재민

사실 초등 시절 숨 꼴깍거리며 시청한 미국 TV드라마 전투(Combat)’ 시리즈물에서 독일군들이 저그끼리 씨부리는 독어 대화는 자막이나 더빙 번역이 없었기에 그 절도 있는 쇳소리의 빠른 음감만 느꼈는데, 거기에 대한 궁금증도 독일어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더 상승시켰다. 이런 작은 것들이 쌓여 나중에 내 청년 시절의 엑기스 같던 십수 년을 투자하게 만든 독일유학 생활로까지 연결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3 시절을 아련하게 만든 영화 3편과 그 사운드 트랙들>

 

1. 사운드 오브 뮤직

 

3 가을부터 한평생 기억에 남는 명작 영화들을 단체관람으로 많이 봤는데, 그 첫 편이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다. 수녀원에서 노래 부르기 좋아하는 수녀 마리아는 일탈적 신앙인의 태도를 좀 교화하려는 의도의 수녀원장에 의해 부인과 사별한 트랩 해군대령 집에 일곱 자녀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뮤지컬 영화의 지존 '사운드 오브 뮤직' photo 김재민
뮤지컬 영화의 지존 '사운드 오브 뮤직' photo 김재민

군대식 가풍에 젖어 있던 7자녀들에게 마리아는 멋진 노래 가르치기로 이 집안의 분위기를 일신하며 이런저런 반전 끝에 트랩 대령과 결혼하여 명실상부한 이 집안의 키멤버 안주인이 된다. 그 당시 뮤지컬 영화의 여신 줄리 앤드루스가 타이틀곡 ‘The Sound of Music’을 비롯하여 ‘Do-Re-Mi’, ‘My Favorite Things’, ‘Something Good’, ‘Edelweiss’같은 주옥같은 노래들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공전 히트에 크게 기여했다.

 

난 그 당시 외워서 부른 에델봐이스의 가사와 곡을 지금도 기억하며, ‘도레미 송’, ‘마이 페보리트 씨잉즈썸씽 굿등의 음률을 오래오래도 좋아했다. 이 영화와 사운드 트랙들만 생각하면 ‘69년 가을이 바로 떠오를 정도이다.

 

2. 대탈주 작전(The Great Escape)

 

지금의 폴란드 지역에 설치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연합군 포로들이 땅굴을 파고 탈주한다는 이 영화는 2차 대전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63년에 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69년에야 개봉되었다. 여기에 주연으로 나온 스티브 맥퀸이 행한 마지막 오토바이 탈주 씬은 지금도 호쾌하면서도 전율스럽게 느껴진다. 후일 영화-빠삐용에도 주연한 이 배우에 대한 70년대 초 이후의 사랑이 찰스 브론슨 사랑과 함께 막 피어오르게 만들어준, 기억에 오래 남는 대단한 장면이었다.

본 영화에 나오는 스티브 맥퀸의 전설적인 오토바이 탈주 씬(1963) photo 김재민
본 영화에 나오는 스티브 맥퀸의 전설적인 오토바이 탈주 씬(1963) photo 김재민

난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인 포로들의 행진’(엘머 번쉬타인 작곡)이라는 사운드 트랙을 듣는 순간 너무나 귀에 바로 꽂혀 영화관을 나온 다음 날 바로 LP판을 매입해 당시 유행했던 포터블 전축을 통해 내 방에서 틈만 나면 최고 볼륨으로 무한 반복해 들었다. 영화-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휘파람 허밍의 콰이 마치’, 영화-사상 최대의 작전에 나오는 주제가와 함께 상당 기간 전쟁영화 3대 타이틀 OST로 모시게 되었다.

 

3. 닥터 지바고

 

수년 전 우리 동기회 홈피에도 소개한 적이 있는 영화이다. 러시아 혁명의 격동기 전후를 배경으로 의사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 역)와 풍운의 강단 있는 여인 라라(줄리 크리스티 역)의 다섯 번에 걸친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스펙터클한 연애담이 주요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맞물려 대서사시처럼 펼쳐진다.

닥터 지바고 영화 포스터 photo 김재민
닥터 지바고 영화 포스터 photo 김재민
영화 속 라라의 서늘 눈매 photo 김재민
영화 속 라라의 서늘 눈매 photo 김재민

3 당시의 단체관람에서는 왜 이 영화가 전 세계 영화팬들을 쥐락펴락한 영화인지 러시아사에 대한 짧은 역사적 배경지식 때문에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이틀 주제곡인 ‘Somewhere’s My Love?(라라의 테마)’는 듣는 순간 사람을 바로 빠지게 했다. 정치적 이유로 소련당국이 현지 로케 촬영을 허가해 주지 않아 스페인에서 찍었다던 러시아적 설원 풍경도 정말 압권이었다.

 

난 이때 현대극장 영화관 화면에서 처음 만난 줄리 크리스티의 깊고 푸르면서도 서늘한 눈동자에 빠져 60이 넘은 지금에도 그 마력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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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자 첫 댓글18.06.11 12:21

, 계속되는 흥미진진하면서도 놀라운 타임머신 여행 ^^ 관련 사진까지... 뿔테쓴 물상선생님은 최극림의 부친 최삼조선생님. 그분은 술을 엄청 좋아하셔서 퇴근 후에는 학부형들을 교대로 학교앞 선술집에 불러서... 그러니 상대성이론 개념 파악할 시간이 없으셨지 ㅎㅎ 나도 총기가 꽤 있었는데, 인자 김박의 1/10도 안되네. 1때 중학 동창을 보면 얘는 중1 때 몇반, 2 때 몇반을 칼같이 외우고 있었는데 닥터 지바고 영화를 보면서 지바고가 라라에게 편지 보내며 "PAPA~"라고 썼는데 러시아 말로 PR 발음이라는 건 나중 알았음

 

김재민 18.06.11 16:12

대기자가 요즘은 일빠를 자주 해주며 왕년의 야구팀 유대감을 팍팍 보여주는구려.

최극림감독의 부친인 최삼조 물상선생은 1학년 때 우리 담당이었지만, 3학년 때는 영국신사같은 풍모의 다른 뿔테의 선생이 물상을 가르쳤심다. 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마닐라공 18.06.11 19:22

닥터 지바고 ,벤허 등 장편 영화는 검열과 상영 시간 늘이기로 잘라 먹는 바람에 스토리 연결이 안되었습니다. 번역도 일본의 것을 그대로 가져 오면서 오역까지 겹쳐서 흥미가 반감되었습니다. 편집을 하려면 앞 뒤로 잘 맞추어서 하면 되는 무식하게 가위질을 하니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지박사 18.06.11 12:36

진영O 물상 선생님 말고는 뿔테안경 물상 선생님은 최삼조 선생님 아님? 글고 생물 선생님은 강태석 선생님으로 기억납니다.

웁스 일빠를 뺐겼네 ..ㅠㅠ

기남이는 중2 때 같은 반 카리스마가 대단했슴. 게다가 팝송을 꿰고 있었고 다니던 큰 교회(?) 학생부 간행물에 팝송 관련 칼럼도 연재했슴. 새로. 쓸 때마다 보여달라고 해 읽곤 했는데 이해 안되는 것이 많았슴. 겉으로 나타난 카리스마 뒤에 깊은 감수성이 있었슴..

 

김대기자 18.06.11 13:41

일빠 신고 때는, 일빠 신고합니다,,,만 쓰고 글 올린 뒤 나중 이야기는 수정해야 진정한 일빠 ㅋㅋ 강태석 선생은 기억나는게, 매독 치료약 "살바르산 606" 그리고 "니 애비 누고?"하던 변태성 발언 ^^

 

김재민 18.06.11 16:19

지박사도 진영O 선생 기억하는 모양이네요. 이 양반 검은 뿔테뒤 눈매 색기가 장난이 아닌 듯 보입디다. 잘못 기억된 생물선생 성함은 고쳤네요.

장기남이에 대해서도 또 겹치는 기억을 갖고 있는 모양임다. 이 친구가 팝송 도사에다 컬럼까지 쓸 정도였다니 그것은 새로 듣는 얘기임다. 보통이 아니었네요. 2, 3 때는 우리 꼬맹이들과는 급이 다른 카리스마를 학교전체에서 누렸지요.

 

김재민

18.06.11 16:27

대기자의 현역시절 오랜 특종경쟁에서 익힌 일빠 내공이 대단해 보임다. 생물선생에 대한 또 다른 진술이 나도 그 시절로 한번 더 뎃꼬 가네요.

 

김대기자 18.06.11 17:56

기남이가 그리 센 카리스마? 응답하라 기남씨!

 

마닐라공 18.06.11 19:43

@김재민 기남이는 듬직한 친구입니다. 군대도 같이 가고 훈련소에서는 향도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나중에 안양에서 연대의 선발대와 의무대의 후발대로 반가운 해후를 하였습니다. 나의 결혼식에는 사회까지 봐주었습니다.
경우에 밝아서 지금도 만나면 항상 형님을 대하는 둣 합니다.

 

지박사 18.06.12 08:19

@김재민 진영O 선생은 경남고 선배임.. 6? 인지 그 밑에인지..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나중에 치과의사가 된 이익주의 3-6반의 담임을 했는지? 익주가 치를 떠는 선생님이지요.... 몇번 얘기하지만 익주는 한 10+ 전에 음주운전을 하다가 세상을 먼저 떴습니다. 진선생님이 좀 야리꾸리한 느낌을 많이 풍겼던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들어오시더니 '여러분도 앞으로 3-4년만 지나면 나와 같이 맥주도 한잔 할 수 있다. 몇년 안남았다.' 하는 말씀을 한 것이 왠지 또렷이 기억이 남니다. 근데 쿨한 얘기를 하는데도 우리는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할까 하고 다들 좀 의심스럽게 들었심다... 왜 그랬지??

 

김재민 18.06.13 12:35

이익주도 생각 나네요. 3 때 우리 반에 많이 놀러왔고, 고교 때는 같은 반도 한 걸로 기억됨다. 홈커밍 30주년 때 부산에서 수십년 만에 서로 해후했는데 미국 돌아간 얼마 후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심다. 미국 27동기들 사이에서 마당발과 의리파 역할을 잘 한다는 소문도 꽤 많이 들었는데 말이지요. 아 참, 이 친구가 경고 2년 다니다 미국 갔다는 사실도 떠오름다.

진영O 선생이 경고 선배라 합디까? 아무튼 이 양반 수업이나 복도에서 아그들 잡아 개패듯 하는 모습을 몇번 목도하고 나서부터는 별로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함다.

 

문두찬 18.06.11 19:06

ㅎㅎ기남 사장 귀가 근질근질하겠소~~
재민박사 이바구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네.
내는 고입 때 수험번호가 1238이었고, 국영수는 좀 쉬웠는데 미술, 음악이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지바고에 대한 이바구도 크게 공감이 갑니다.
앞으로 전개될 고교 시절 얘기는 더 재미있을 듯^^

 

김대기자 18.06.11 19:37

누구든 고교 시절 댓글 안달면 진짜 변태 ㅋㅋ

 

김재민 18.06.13 10:27

문원장은 중학도 제주에서 다녔능교? 아니면 부산에 있는 중학에서?

3 때 내가 있은 길창순 선생 반에서 반장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아물사물 하외다. 아무튼 반듯한 친구로는 확실히 기억됨다.

 

문두찬 18.06.19 11:16

@김재민소생은 국민학교 5학년 때 제주에서 부산으로 이사와 남일국민학교와 동아중을 나왔소이다. 3 때 재민교수랑 같은 반 했었지요. 미노샘, 원익법사, 서토 모두 3학년 6반 길선생님 반이었지요.
반장은 지금 벨기에 가 있는 유봉이, 부반장은 고인이 된 정현우군이 했었고.
재민교수는 당시에도 준수한 미남에 온순한 모범생이었던 걸로 기억이 되오~~

 

마닐라공 18.06.11 21:59

소나기의 윤양이 세상을 뜨는 장면에서는 영판 내가 알고 있는 소녀가 세상을 버린 것처럼 감정 몰입 되었습니다. 만약 글치 않았다는 동무들이 있다면 사람도 아닙니다...

 

김재민 18.06.13 10:34

마공은 거기 그 소녀가 무슨 윤초시 손녀라서 성이 윤가일걸로 바로 캐치했는갑네요. 아직도 총기 총총함다. 나는 처음에 윤양이라 하니 갑자기 이 무슨 소리냐 하고 좀 생경스러웠는데 말임다.

가시나, 스토리를 한번 더 챙겨 읽어보니 소설 배경인 양평 양수리 쪽에 올 때 벌써 백혈병 같은 불치병을 갖고 왔더만요.. 그 소년이 마공이었다면 집의 약국내 약 다 뒤져 살려냈을 거라 확신함다.

 

마닐라공 18.06.13 12:56

김박사는 양수리 읍내 다방 오봉순이 윤양이 생각나는 모양입니다...~~~
윤양을 살릴 수만 있다면 골수이식 수술도 할 요량인데, 그것 검사하는 것이 참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라고 그 당시 생각은 그렇는데, 지금 생각은 "가는 인연 안 붙잡고 오는 인연 안 말린다."로 바뀌었습니다...

 

백민호 18.06.11 22:30

소나기를 연상시키는 그림에다 이야기 마다 삽입시키는 그림 포스트들이 전문가 이상의 솜씨입니다.
전투, 사운드오브 뮤직, 대탈출 영화에다 시사문제
3 때 친구들 이야기까지 엮으니 대단합니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마닐라공 18.06.12 08:46

가만히 보니 전투, 사운드 뮤직, 대탈출, 닥터 지바고 등이 다 독일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닥터 지바고는 1차 대전 이후의 러시아의 공산 혁명 그 외는 2차 대전과 관련이있습니다. 그리고 김박사는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말입니다.


사운드 오버 뮤직의 가족으로 분한 본 트랩 대령 역이나 막내 딸까지 다 죽고 현존하는 배우는 줄리 엔드류스 뿐이라고 하든데, 원래는 오드리 헵번으로 갈 역이였고 마이페어레디는 쥴리에게 갈 역이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래? 누가 그래!

 

김재민 18.06.12 08:12

백교장의 바람잡는 솜씨는 아주 능란하오이다. 아무튼 꼬드김과 부추김에 의해 자서전 시리즈에 동참하게 되어 지금 뺑이 치는 기분으로 끄뜩끄뜩 나가기는 하는데 힘깨나 좀 드네요.

하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늙어감에 대한 슬픔을 위무하는 옛날 회상거리들을 반추시켜주는 돗자리 까는데 커다란 보람을 느끼며 계속 가볼람다. 으샤으샤나 많이 해 주시구려..

 

김재민 18.06.12 08:16

마공의 추론 능력과 생각확장의 상상력은 세월을 거꾸로 역진시키며 헤쳐 가는 것 같소이다. 그러고 보니 언급한 사안들에 독일이 다 연관되어 있네요, 우리 세대에게는 어쩌면 미국만큼이나 이 나라가 엮여있는 것 같심다.

 

김재민 18.06.13 10:40

백교장의 바람잡이에 내가 덜컥 가보겠다 했지만 쪼끔 힘이 들기는 함다. 그래도 많은 동기들이 이 댓글 마당에서 자기들 시점의 온갖 기억들과 추억담들을 다 쏟아내면서 자서전 내 여러 자서전들이 또 다시 펼쳐지니 사명감 느끼고 자리 계속 깔아 보겠심다. (쓰다 보니 며칠 전에 단 답글 내용과 비슷하네요. 그냥 한 소리 한번 더 해도 그렇거니 해주소).

 

백민호 18.06.12 12:15

남동생이 경중29회 경고 29회이면 형제가
공부를 다 잘 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교육열을 알 수 있겠습니다.

 

김재민 18.06.13 10:44

내 동생은 우리 마미의 장남 편애정책에 걸려들어 중3 때부터 삐딱선을 좀 타다 동아고->동아대->동아건설로 가는 인생행로를 보입디다. 지금은 전국 각 건설현장의 감독관 같은 일거리 찾아 다니고 있고요.

 

마닐라공 18.06.13 15:48

계씨는 아예 대동아제국 고등학교로 시작하기로 작정을 하였군요... 아직도 불러 주는 곳이 있으니 부럽습니다. 난 대동아제국중학교를 나와서 발길이 바뀌었습니다...

 

지박사 18.06.12 12:49

나는 중3에 올라가자 중2 때까지의 택도 아닌 생활을 완전 청산하고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딱 20등에 머물러 그 안에 들어가지지가 않았슴.. 그래도 학우들은 다 생각남.. 이철, 정우환, , 임상수, 이양헌, 서정환.. 3학년 11번부터 6번까지...

그토록 총명한 김박이 3학년 때 학우들이 잘 생각 안난다는 것은 정말 온신경이 오지게 그리로 쏠렸었던 탓이다가 유일한 논리적 설명일 것 같소이다..ㅋㅋ

이제 벌써 7회로 들어서며 기운도 빠지고 부담스럽겠지만 지치지 말고 명품 회고록을 계속해 주기 성원합니다. 혹시 정 힘들면 올리는 인터벌을 좀 길게 하면 우떨찌? 6-7일 정도??

빨리 끝나면 후속타자 문제도 있고...

 

김재민 18.06.13 10:54

지박사는 중 1, 2 때 무슨 택도 없는 생활을 했능교? 한 열흘 전에 하동에 있는 진회와 부산서 만나지는 못한 채 통화 한번 했는데, 지박사가 지하고 지낼 때도 보통내기가 아닌 'Clever한 친구'라고 해쌌습디다. 난 진회 지보다 더 현상의 다방면을 한 눈에 캐치할 수 있는 '통찰력의 도사'로 이해했네요. 대충 맞심니까?

자서전 쓰는 것은 소생이 쓰고 싶어 쓰는 것임다. 너무 걱정 마시구려.. 백교장이 다음 필진들 확실하게 포섭할 때까지 같은 시절을 함께 했던 우리 동기들 추억담을 함께 쏟아내는 공간 제공자의 역할을 깊이 인식하고 계속 가 보겠심다.

 

지박사 18.06.12 12:50

닥터 지바고는 무슨 연유인지 처음엔 충분히 이해를 못했던 것 같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좋아졌던 영화같고.. 특별히 생각나는 장면은 라라의 애인이 라라에게 '세상에는 창부와 숙녀의 두 가지 종류의 여자가 있지.."(?)이고..

또 하나는 온 천지에 눈이 가득한데 빈집에 들어온 유리(지바고?)가 손가락 끝만 나오는 장갑을 끼고 책상의 먼지를 치운 뒤 펜과 잉크로 시를 쓰는 장면.. 영화 처음에 지바고와 라라의 딸이 삼각형으로 된 러시아 악기(기타?)를 들고 무심히 걸어가는 것.. 글고 맨 마지막에 전차에서 내려 급히 쫓아가다 쓰러지는 순간 등..

 

지박사 18.06.12 12:51

이런 결정적 순간들 마다 김박 말대로 'Somewhere my love'가 백그라운드에 쫘악 깔렸지요.. 나는 그래서 지바고가 내 종씨라고 한때 주장도 했슴미다


사운드오브 뮤직은 좀 내 취향이 아니었고.. 오히려 벤허, 스파르타카스 이런 영화에 많이 감동 받았습니다. 근데 그게 고등학교 땐지 중학땐지가 아물아물함.. 벤허가 노예선에서 돌아와서 엄마와 동생을 찾는데 문둥병에 걸려서 숨어서 말하는 장면.. 글고.. 유명한 노예선 노젓기..ㅋㅋ 스파르타커스는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커크 다글러스에게 진 시몬즈가 아들을 보여주는 끝장면(?).. 그런 것도 기억나고... 나중에 이런 영화얘기도 쫌 해주소..

 

김대기자 18.06.12 21:43

지박사 헨리가 지바고 후손인데 한표! ^^

 

김재민 18.06.13 11:58

지박사의 이 장면들에 대한 감성이 거의 나와 똑같아 보여 많이 반갑구려. 라라에게 상기 대사를 읊은 놈이 라라 엄마까지 라라와 함께 쓱싹한 오입계의 지존으로 나온 코마롭스키라는 화상이지요.

당시에 유명했던 '로드 스타이거'라는 배우가 이 역을 맡았는데, 흑인배우 시드니 포아티에가 주연한 '밤의 열기 속에서'라는 영화에서 무슨 경찰서장으로, 70년대 후반의 '워털루'라는 영화에서 나폴레옹 역으로 나왔지요. 그 악기는 '발레라이카'라는 거고요.(지바고 리뷰 쓸 때 관련 자료들 찾아봤기에 좀 아는 체 함다).

그림입니다.
&#xA;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f60002b.png
&#xA;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2pixel, 세로 72pixel

김재민 18.06.13 12:23

지박은 벤허, 스팔타쿠스 같은 대형 역사물 영화에 더 꽂혔던 모양이구료. 나도 이 두 영화 한 대여섯번은 봤네요. 벤허에 나온 찰톤 헤스톤도 추억에 남는 배우지만, 스팔타쿠스에 나온 카크 더글라스 참 대단했지요. 이 아재는 악역도 잘 해 난 더 인상에 깊었심다.

수년 전에 미국 드라마로 나온 스팔타쿠스도 봤지만 좀 더 관능적이고 끔찍한 그림들 빼고는 그냥저냥하는 수준이데요. 50년대 말에 만들어진 영화가 지금 봐도 사람을 끌어들이는 인물 캐릭터들과 스펙타클한 마지막 전투 씬들이 대단합디다. 할리우드 전성기 때 영화라서 그랬는지 ', 미국놈들 대단했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데요.

 

마닐라공 18.06.13 16:18

@김재민발레라이카? 삼각형 기타! 기타 사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만돌린, 우쿨레레, 벤죠, 비파,..

 

지박사 18.06.12 13:02

글고 지바고 얘기를 쓰다가 옆길로 샛는데.. 난 어릴 땐 라라보다 본부인 제랄딘 챠플린 (찰리 채플린 딸)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슴... 근데 어른이 되고 보니 라라가 좀 더 나았슴.. 근데 둘 다 외모로는 그렇게 임프레시브 하지 않았슴.. ㅋㅋ 왜 이리 말이 많지??

 

마닐라공 18.06.12 13:48

혁명의 격동기에 남녀의 운명이 의도치 않게 휘둘립니다. 유리가 전차에 타고 있는 라라를 보고 쫒아가다 쓰러지고, 나중에 유리의 이복형이 그들의 사이에서 난 딸아이를 찾아가서 부모들의 사연을 말해주어도 그 딸은 So What? 하는 둣하는 표정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저거 둘이는 세기의 뜨거운 사랑을 해도 끓는 용암이 식어지 듯 사랑도 사루마다 벗어내릴 때이지 다시 사루마다 올라가면 언제 그랬나 싶습니다.

 

김재민 18.06.13 12:43

이 장면에서는 보는 눈의 각도가 나와 좀 다른갑심다. 챨리 채플린의 딸로 나온 본처 제랄린(토냐) 채플린은 본처라는 극중의 한계(현모양처) 때문에 불륜녀들이 풍기는 야성적 마력은 죽었다 깨도 극복하기 어려웠을 겜다. 암만해도 라라의 매력을 덮기에는 역부족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여겨지네요.

그런데 지박사의 여성 취향이 소년시절부터 이런 정숙한 여인상에 더 꽂혔다니, 우리 같은 태생적 한눈팔이들과는 그때부터도 급이 다른 '바른 생활맨'의 기운이 엿보이외다.

 

서토 18.06.12 15:01

김박사 글쓰기 성의에.. 왠지 진지하게 머리가 숙여지는 기분입니다.

관련사진 등 자료까지 찾아서 이처럼 창의성있게 반듯이 써올리자면.. 그 시간과 공이
어느 정도인가를 상당부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근자.. 미국 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즈" 를 아주 흥미있게 계속 보고 있는 바..
김박사의 글이.. 마치 그런 정도의 흥미를 저에게 자아내고 있습니다.

행여 무슨 일로, 어느 날 김박사가 "인자 고만 쓸란다" 할까봐.. 우려되기조차 하는군요.^^

저도 같이 경남중을 다녔다면.. 꺼집어낼 만한 이바구가 더 많겠지만..
같은 학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김박사의 강한 글힘 때문인지.. 따라 붙여낼 이바구가 머리 속에 계속 - ^^

 

김재민 18.06.13 11:25

서토, 오늘은 '머리 숙인다'는 표현으로 격려사의 성찬을 펼치는구려. '과공은 비례'라 하지만 서토의 이런 식 찬사 표현이 우리같이 귀얇고, 부친처럼 와이로에 홀딱 잘 넘어가는,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인간들에게는 사실 잘 먹히지요. 계속 그만 두시지 마소. (친구들이 '저것들 또 놀아나고 있네.. 쯧쯧' 하는 비아냥을 피할 정도까지만 말임다)

나는 경남중 얘기보다(아는 게 이것 밖에 없으니) 서토의 개성중 얘기가 더 솔깃하게 들리니 생각나는대로 자주 읊어 주소.

 

서토 18.06.12 15:23

3때 뒷자리 옆 건너에 마치 장비같이 우람한 체격과 얼굴의 동급생이 있었습니다.

심심하면 앞자리 반원들을 자기 자리로 불러 공연히 가슴이나 배에 주먹질을 해대고.. 점심 도시락을 뺏어 먹거나 동전도 뺏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거의 학교내 깡패나 다름없었다 회고됩니다.

근처있는 저에게는.. 그저께 완월동에 다녀왔다는 등의 색계 이바구들을 자주 펼치곤 했지요. 이 친구가.. 국어시간만 되면 공연히 칠판에 엉뚱한 낙서를 해두어, 들어서는 김양자 선생이 짓는 당황 또는 곤란한 입장의 모습을 즐기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선생님을 크게 사모하고 있던 터라..그런 정황을 도저히 그대로 계속 넘길 수가 없었지요.

 

서토 18.06.12 15:50

어느날 국어시간이 파하는 대로 그에게 다가가 이제 더 이상 그러지 않도록 말을 붙이니..

"이 새끼가-" 하면서 바로 멱살을 쥐고 나오는데.. 당시 덩치는 부족했지만 키는 그와 비슷했기에 우당탕하며 같이 잡고 뜨게(?) 되었는데..

반원들이 말리는 와중에.. 마침 담임선생님이 다른 일로 잠시 들렀다 이 모습을 보게되어 싸움은 중단되었고..이 친구는 이후 담임에게 불려가 상당한 훈계와 고초를 겪었슴미다.

결론은 보나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있는(?) 놈이 최고이듯, 학교에서는 역쉬 공부를 쬐금이나마 더 잘하는 놈에게(?) 힘이 더 쏠릴 수밖에 없는 것 - ^^

 

김재민 18.06.13 17:13

이건 완전히 소설 감이자 영화 줄거리 감임다. 우리는 소설에서만 경험했던 것을 서토는 실전으로 바로 체험했네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초장 얌전이 권상우가 나중에 이소룡 되는 바로 그 스토리를 듣는 듯 함다.

김양자 선생은 비유가 좀 억지스럽지만, 요즘 한국에서 화제의 대마왕으로 등극 중이고, 영화에서 분식집 여주인으로 권상우에게 추파던지는 여배우 김부선이가 얼핏 끼어들 뻔 하다가, 다시 여주인공 한가인이로 변모되는 겹치기 이미지가 내게는 펼쳐치는 중임다.

마지막의 '공부 쫌 하는 놈이 더 강하더라'는 서토의 멘트도 이 영화에서 권상우가 이소룡 놀음 그만두고 재수학원생 생활하는 것과 상통합디다.

 

서토 18.06.12 15:52

이후로 이 친구와는 - 이제 이름이 생각나네. 김갑수 - 오히려 더 가깝게 된 바.. 졸업 때까지 제 주변에 엉뚱한 놈들이 엉겨붙지 않게 막아주는 호위병 역할을 잘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갑자기 보고 싶네요.^^

당시 교무실에서 이 이야기가 은연히 알려졌던지.. 이후로 김양자 선생님이 저를 더욱 더 아껴주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저는 지금껏 이해하고 잇슴미다.^^

 

김대기자 18.06.12 21:45

멋져, 서토^^

 

지박사 18.06.12 15:57

https://youtu.be/5ysdHjaeGGU

소나기를 무색하게 하는 풋풋하던 시절의 서토의 첫사랑 스토리네요..

글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옆 동네엔가 누가 개성중을 다녔는데 그 친구 이름이 '김지표'라고 했는데 서토와 동급생이었을 거요.. 유일하게 알았던 개성중 재학생..

그림입니다.
&#xA;원본 그림의 이름: mem00002f600038.jpg
&#xA;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0pixel, 세로 90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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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공 18.06.13 17:46

손예진? 고것 참 풋풋하구먼...풋풋(foodfood)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여~~~

 

이법사 18.06.13 05:02

마공은 과연 승속을 떠난 천재요. 늙어 가면서는 꼭꼭 씹어 먹으라는 마눌님의 훈계로 점심 한 숟갈에 스무 번씩 씹으며 요기까지 읽다가 모니터에 다 뿜어 버렸시다. 물려 주소.

 

마닐라공 18.06.13 17:46

풋풋(foodfood)은 이거사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군요... 법력이 태평양을 건너서까지 미치는군요,,,
입이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깨끗하나 입이나 몸에서 나오는 것은 더러운데 씹다만 밥풀떼기 찾아 가지고 뭐 하시렵니까?

 

김재민 18.06.13 12:49

지박사, 영화-클래식에서 나오는 타이틀 송 '나에게 넌 너에게 난'을 여기서 들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네요. 이 노래를 부른 '자전거 탄 풍경'이란 그룹을 요즘 아그들은 '자탄풍'이라 부릅디다. 이 영화 봤을 때 소나기가 내리는 상황이 자동적으로 중3 때 접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바로 매치 되더만요.

요 추억 때문에 얼마전에 천하의 손예진이가 나온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JTBC 드라마를 와이프는 유치하다고 안보는데도 그 비웃음을 끝까지 뿌리치고 열심히 봤네요. 이런 손예진이가 이제 방송 나이 37세면 근 40에 가까와졌다는 얘기겠지요. , 또 한번 '무정세월 약류파'를 절감했심다.

 

김재민 18.06.13 12:32

이법사가 그윽한 선문답의 고수인줄 만 알았는데 요런 세속적인 유머까지도 선문답으로 승화하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외다. 대단함다.

김재민 작가·경영 컨설턴트 photo 김재민
김재민 작가·경영 컨설턴트 photo 김재민
<필자 소개> 김재민은 한국외대 독일어과,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뒤 산업경제연구원에 근무하다 도독(渡獨)하여 함부르크대와 함부르크 국방대에서 경영학 디플롬과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경영학 분야에서는 글로벌경영, 전략경영, 마케팅, 창업경영, 인문경영 분야를 주력으로 연구하고 강의했다. 이 과정을 현대경제연구원, 현대중공업, 부산 경성대에서 근무하며 수행하다 2020년 퇴임 이후에는 본격적인 프리랜서 글쓰기 작가와 스타트업 기업들의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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