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번의 이수용, "산은 나의 종교..."
수달, "식사 중인데 성가시게..." 한상훈 질타

이번에는 기행은 빼고 그냥 사람들 얘기다.

고성 금강산 제1봉 신선봉 계곡 위 화암사 경내 photo 최영훈
고성 금강산 제1봉 신선봉 계곡 위 화암사 경내 photo 최영훈

그제 밤, 음주에 고삐 죄는 여류 형이 풀었다.

 

형이 한달살이를 하는 홍천 8경 모래소 내린산방에 빈객들이 하룻밤을 묵었다.

 

인근 명현산방의 맹우 형의 포스 넘치는 형수가 하사한 오미자 술 한 병과 내가 사흘 전 사온 곰취 막걸리를 놓고 4자 방담을 했다. (명현산방 얘긴 다음으로 미룬다. 거기에 나의 집필실이 생길지도...)

 

딱히 정해진 주제는 없었다.

 

백두대간 이야기가 많았다.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기후위기의 심각성도 거론됐다.

 

첫 테이프는 수문출판사를 34년째 운영하고 있는 동강지킴이 이수용 선생이 끊었다.

이수용 수문출판사 대표 photo c최영훈
이수용 수문출판사 대표 photo c최영훈

그는 백두대간 종주를 두 번이나 했다.

 

올해 중 백두대간의 인문학적 접근을 한 책을 낸다.

 

제목을 고민하는 단계다.

 

시인 여류 형에게 좋은 문패를 달아주시라고 정중하게 주문했다.

 

그는 첫 번째 종주는 근 4년 세월, 2004년에 시작해 2008년에 끝났다 했다.

 

두 번째 종주는 진부령에서 막힌 길을 뚫고 향로봉까지 갔다.

 

한상훈 박사의 도움에 힘입었다.

 

"박사님이 어떠냐?"고 제안해 "그래 합시다"라고 맞장구를 쳐 남쪽 백두대간 종주의 화룡점정을 찍었단다,

 

20년 만에 감격적인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비무장지대DMZ 출입증을 소지한 한상훈 덕분이라고 했다.

이수용 선생의 술회.

 

"젊은 사람도 만나고 또 초등학교 학생 세 명도 데리고 같이도 했어요. 김기준 씨 애들이 초등학교 다녔어요. 3, 4학년 걔네들과 부인까지 함께..."

 

그때가 6월이라 비를 엄청나게 맞았다고 했다.

 

"근데 애들이 더 잘 가고 아주 신나 해요. 걔네들이 이제 다 군대 가 있고 그래요."

 

책은 1, 2차 중 2차 종주만을 갖고 내게 된다 했다.

 

그가 두 차례 종주를 꼼꼼히 카메라와 메모로 기록한 까닭.

 

"그걸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가 있어요. 속리산 제일 높은 데가 천황봉이거든요. 처음 갔을 때 천황봉이었어요. 왜식 이름 그대로였거든요. 그 즈음 천왕봉으로 하자는 운동이 있었나 봐요. 두 번째 종주 때는 천왕봉으로 바껴있더군요."

 

그는 200자 원고지 1800매를 한 권으로는 묶을 수가 없고, 편집하면 두 권으로 해야 할 판인데 제작비 사정으로 눈물 머금고...

 

"반기문 총장에 대한 일화, 제사 집에서 제삿밥 얻어먹고 눈을 붙인 얘기같이 잔잔한 사람 얘기가 다 빠져버렸어요."

 

이어 야생동물과의 사랑에 빠진 한상훈 박사.

오른쪽이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photo 최영훈
오른쪽이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photo 최영훈

한상훈과 이수용은 가리왕산 원상복구에 나선 동지들이다.

 

관계당국은 몇 년째 평창동계올림픽 때 스키 코스 만든답시고 훼손한 걸 당초 약속을 어기고 복구를 외면한다.

 

원상복구 여론을 환기시키기 위한 생태계 모니터링을 몇 년째 함께 해왔다.

 

"6월에 가서 점검하고, 엊그제 또 점검하러 갔으니까 한 3,4개월마다 설치한 다섯 대 카메라의 영상기록 카드를 교체합니다."

 

그는 방담 중에도 노트북에 기록된  영상자료들을 체크했다.

 

이제 겨울이니까 내년 봄에 찾아가려고 카메라 점검과 카드 교체까지 한 거다.

 

"카드 용량이 32기가, 배터리도 좋아져 1년 동안 놔둬도 문제가 없어요."

 

관찰 카메라는 가리왕산의 해발 1200고지부터 600까지 고도별로 5대를 설치한다.

매번 출동할 때, 아침 6시에 올라가 오후 서너 시에 내려온다고 한다.

 

가리왕산 원상복구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같이 가 일손을 돕는다.

 

관찰카메라를 동물들도 안 보이던 게 있으니까 유심히 쳐다보곤 한다.

 

어떤 동물은 호기심이 많아 냄새도 맡아보고 눈으로 요리조리 본단다.

 

"멧돼지는 카메라를 씹어 보기도 하고, 머리로 막 쳐받기도 하고 그러죠."

 

이수용 선생이 늑대에 관해 물었다.

 

"거의 사라진 지 한 한 20년 이상 된 것 같아요. 90년대까지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상훈 박사는 표범의 존재 여부에 꽂혀 있다.

 

"하동의 형제봉 쪽에는 옛날에 시라소니하고 표범이 나타났다고 해요. 지역 사람들이 사라소니는 잡은 뒤 불태웠다고 그러고..."

 

사진도 없긴 하지만 표범 같은 맹수의 출몰에 관한 증언도 있다.

 

"야간 사냥 간 사람들이 개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니까 나무 위에 뭔가 큰 짐승이 눈에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개들이 겁을 내 접근을 못해 쳐다보니 저건 표범이니까 잡으면 안되겠다 해서 철수했다 하더라고요."

 

가야산과 지리산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한상훈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옛날 자료를 보면 한양 인근에서 여자분이 남편이 표범하고 뒤엉켜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옆에 있던 도끼로 목을 내리쳐 남편을 구했다는 신문 기사도 있어요."

 

한상훈은 "남자가 여자를 구했다는 기사는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반대는 없다"며 미소짓는다.

 

"그러니 여자를 조심하라"고 농담까지 했다.

 

강산이 3번 바뀔 동안 야생동물을 연구한 사람의 얘기가 아무래도 더 재미있다.

 

"연구하는 사람도 야생동물들을 잘 못 봐요. 동물들이 냄새나 기척을 알아채고 미리 다 피해버리니까요."

 

수달들은 물 안에 있으니까 사람을 우습게 생각한단다.

 

"조피 볼락을 열 마리쯤 프라스틱 상자에 넣어 물에 담가두면, 조용하게 있던 볼락들이 수달이 한 100m에서부터 접근하면 난리가 나요. 살려고 파닥거리는 소리로...수달이 금방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가두리 양식장에 올라와 노획물을 먹고 있으면 제가 가서 카메라를 체크하는 사이 벌써 수달이 뒤에 와서는 빤히 쳐다보는 거예요. 마치 '나 식사 중인데 왜 성가시게 굴어'라는 표정으로.

 

맹수는 물론이고 짐승들은 새끼나 나와바리(영역)를 지킬 때는 죽기 살기로 전력투구한다.

 

가치 있는 것을 위해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목숨을 건다.

 

표범과 사투를 벌이는 지애비를 구하기 위해 겁이 나지만 도끼를 든 여인처럼.

 

이수용은 올해 중 펴낼 백두대간 종주에 관한 책이 여전히 걱정이다.

 

세파에 시달렸을 텐데, 그는 참 법 없이도 살만한 천진한 얼굴을 지녔다.

 

신구문화사를 만든 이종익 선생을 아버지보다 더 존경하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열화당이라는 압도적 출판사가 있어, 산 쪽으로 정했다고 한다.

 

"사람 얘기를 다 걷어내는 바람에 너무 재미가 없고, 주로 오늘은 어디서 어디까지 얼마나 가고, 무슨 꽃을 보고 무슨 짐승 똥을 보고 뭐 그런 드라이한 기록들이니까요."

 

30여 년, 한 우물을 지긋이 파고 또 판 두 사람은 지구생태계에 닥친 기후위기 대응에도 열심이다.

호우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홍천 내면의 내린산방 앞을 휘감고 도는

내린천이 어제부터 내린 폭우로 급류탁류로 변했다.

 

여류 형과 나도 밤늦게까지 이어진 방담에 끼었지만 주로 들었다.

여류 이병철 형, 화암사에서 볼 수 있는 울산바위 수바위 동해바다 조감도를 촬영하고 있다. photo 최영훈
여류 이병철 형, 화암사에서 볼 수 있는 울산바위 수바위 동해바다 조감도를 촬영하고 있다. photo 최영훈

두 사람의 앞날에 만복이 깃들길, 하느님의 은총부처님의 가피가 함께하길 빈다.

 

이만 총총.(계속)

필자 최영훈 자유일보 주필 photo 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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