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과 같은 이름의 한자를 백성들이 못 써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예로부터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고심을 많이 했다. 소리글자인 알파벳과 달리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사주에 맞는 글자를 고르다 보니 고심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름과 관련해 흥미로운 전통 중 ‘기휘(忌諱)사상’이란 것이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까지는 엄격하게 지켜진 풍습이다. ‘기’는 꺼린다는 뜻이고 ‘휘’는 높은 사람 이름을 가리킨다. 기휘사상은 특정 임금의 대에는 그 임금을 존경해 임금과 같은 이름의 한자를 백성들이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이름에 쓰지 않는다는 풍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사상이 있는데 임금이 쉬운 한자 예를 들면 ‘한 일(一)’자나 ‘인간 세(世)’자 같은 글자를 넣어 이름을 지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임금의 치세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름을 지을 때 이 한자를 쓸 수 없게 돼 몹시 곤혹스러울 것이다. 이런 백성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왕실에서는 어려운 한자로 이름을 지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임금인 세종대왕의 이름은 도(祹)다. 조선왕실은 전주 이씨이니 이도가 세종대왕의 성명인 셈이다. 이 한자는 웬만한 옥편에는 나오지 않는 희귀한 글자다. 큰 옥편을 찾아보면 ‘복 도’라고 적혀 있다.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photo Pixabay
서울 광화문의 세종대왕 동상 photo Pixabay

세종대왕은 1397년생이다. 이때는 부친인 태종이 정안군(靖安君)에 봉해져 있을 때이니 세종대왕은 태어났을 때부터 왕족이었던 셈이다. 반면 세종의 부친인 태종의 이름은 이방원(李芳遠)이다. 태종은 지방 호족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에 쉬운 한자가 들어가 있다. 태종의 부친인 태조 이성계(李成桂)나 형인 정종 이방과(李芳果)도 마찬가지로 평범한 한자로 작명을 했다.
조선 후기의 현군 정조의 본명은 최근 방송된 TV 드라마를 통해 이산(李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祘은 ‘셈 산’이란 뜻과 음이 있으며 算의 옛날글자다. 그러나 祘은 ‘성’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주된 근거는 정조의 명으로 편찬된 운서(韻書)인 ‘규장전운(奎章全韻)’을 들고 있다. 이 책은 祘의 음을 ‘셩’이라 표기하고 ‘御諱(어휘·임금의 이름)’라고 적어 놓았다. 단모음화 현상을 고려하면 ‘셩’은 ‘성’이 된다. 따라서 ‘李祘’은 ‘이산’이 아니라 ‘이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휘사상은 임금뿐만 아니라 공자와 같은 성인의 이름에도 적용됐다. 대구가 좋은 예다. 삼국시대(5세기 말~6세기 초) 대구의 옛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이 달구벌(達句伐)이다. ‘벌(伐)’은 촌락, 읍성을 뜻하는 말이며 ‘달(達)’은 원(圓), 주(周) 등 넓은 공간을 의미한다. 대구라는 명칭은 757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이 한화(漢化)정책을 펴면서 대구현(大丘縣)을 설치한 것이다. 조선 세종 원년(1419년)에는 대구현이 대구군(大邱郡)으로 승격한다. 눈썰미가 있는 독자라면 대구의 한자 표기가 다른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대구의 한자 표기가 달라진 것은 공자의 이름과 같은 한자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성은 공(孔)이고 이름은 구(丘)다. 丘는 옥편에 ‘언덕 구’로 나와 있지만 공자가 태어났을 무렵엔 ‘짱구’라는 속어로도 쓰였다. 공자는 머리 모양이 짱구였다. 전통시대 최고 성인인 공자의 이름과 같은 한자를 지명에 쓸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丘는 같은 뜻이지만 외형이 다른 글자인 ‘언덕 구(邱)’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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