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억눌린 해외여행욕구 달래주는 흥미로운 여행책

코로나19가 바꾼 인류의 삶 중 큰 덩어리 하나가 해외여행 금지 내지 불가능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해외여행이 다시 가능해지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점이 언제가 될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여행 자() 앞에 붙는 수식어만 다른 것 같지만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은 질이 다르다. 여행의 본질 내지 미덕이 낯선 곳에서의 체험을 통한 자아의 발견이라고 한다면, 장소만 다를 뿐 내가 사는 곳과 같은 연장선상인 국내보단 해외가 적격이다.

코로나19시대의 해외여행은 더 애달픈 존재다. 맛을 아는데 직접 맛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애가 타겠는가. 이럴 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간접경험이다. 인터넷과 유튜브 등에 돌아다니는 여행 콘텐츠가 우선 떠오를 것이다. 요즘은 영상시대니까.

그러나 이런 영상 콘텐츠들 위에 우뚝 서는 여행책이 나왔다. 나도 책을 읽은 지 오래 돼서 코로나19시대에 웬 종이책, 그것도 여행책?”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책을 집었다. 전직 기자 우태영씨가 쓴 이탈리아를 만나면 세상은 이야기가 된다는 긴 제목의 책이다. 부제(副題)도 길다. ‘밀라노에서 몰타까지 아내와 함께 떠난 21일간의 여행’.

나의 의아함은 5쪽의 서문을 읽으면서 어느새 봄눈 스러지듯 사라졌다. 오랜 기자생활로 다져진 저자의 필력은 나를 마치 현장에 같이 있는 것처럼 바로 끌어들였다. 30여 년간 사회생활을 열심히 한 저자는 퇴직을 앞두고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답 겸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 부인(이하 그의 표현을 빌려 아내라고 하자) 김미령 여사에 대한 선물로 해외여행을 생각하고 여행지를 물색했다.

후보지로 동남아, 스페인, 미국, 중국 등 이 나라 저 나라를 생각하다가 유럽,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로 결정한다. 선정기준이 흥미롭다. “아내가 힘들면 안 된다유럽 국가 중 사라지면 가장 아쉬운 나라. 이렇게 저자는 지난해 9월 나이 60 넘어 3주간의 이탈리아 부부배낭여행을 떠났다. 물론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이고 지금 생각하면 인류 전체적으로 참 좋은 때였다.

 

 

나는 이 책을 금방 다 읽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우선 이 책은 괜찮은 보통사람이 쓴 느낌을 준다.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쓴 이탈리아 여행책을 보면 좀 어렵고 지루하다. 저자 자신도 잘 모르면서 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는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있는 보통사람이고, 대중적인 글쓰기를 오랫동안 해온 기자 출신이다. 따라서 독자는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나보다 반 보 내지 한 보 정도 앞서가면서 알려주는구나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책 내용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온다.

저자의 준비성 내지 성실함도 이 책의 미덕이다. 이 책은 이탈리아 기행서답게 사진이 많아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데,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90%가량은 저자가 직접 찍었고 화질과 구도도 꽤 수준급이다. 저자 내외가 들른 곳이 꽤 적지 않고 이 많은 곳의 자료를 챙기는 것도 여간 일이 아닌데 저자는 이 작업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즐거웠던 대목이 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다. 저자는 당초 의욕적으로 계획을 짠 듯하다. 그러나 실제 여행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남자보다 여자가 평균적으로 걷기 능력이 약하다는 사실이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 대목. “아내가 중세 도시를 바삐바삐 걸어 다니는 일은 너무 힘들다고 하였다. 아내는 밤마다 파스를 종아리와 발바닥에 붙이고 다닌다.” 저자는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여러 번 미안해하고 아내를 배려해서 일정을 바꾸기도 한다. 인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들 내외의 서민적인 풍모도 독자의 호감을 북돋운다. 김미령 여사는 피렌체에서 이런 저런 명품 숍에 들렀지만 구경만 했다. “명품도 젊었을 때 들러야 명품이라는 게 지론이라면서. 저자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젊었을 때는 나중에 돈 벌어 산다고 생각하고 사지 못하였다.” 보통사람 지아비와 지어미의 애틋한 마음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대목이다.

저자 내외는 황혼이 아스라이 비치는 연령대에도 21일간 이탈리아 전국의 주요 유적지를 강행군했다.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고적답사와 박물관 탐방을 떠났고, 여비와 식비 숙박비 등을 아껴가면서 입장료 내고, 발품 팔고 시간 들여가며 힘들게 실물을 직접 관람했다. 까닭이 무엇일까?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등의 유적지에 대한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구글만 들여다봐도 얼마든지 있는 이 시대에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것은 아마도 현실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관계에 빗대서도 설명한다. “인간관계의 진정한 소통은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오래된 유적이나 예술품들도 직접 찾아보면 옛 사람들이나 작가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나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이탈리아가 됐든 어디든 직접 해외로 가서 옛 사람들과 대화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코로나19가 아직은 기승을 부려도 언젠가는 끝날 테니까. 행선지가 이탈리아로 결정됐다면 그 때 나는 이 책을 들고 이탈리아를 누빌 생각이다.

/ 박영철 기자

저작권자 © 미디어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