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21세기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연설
The Times, "우리 시대의 게티스버그 연설!"
침략자 Putin의 심장을 겨누는 예리한 비수!

우크라이나 현직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photo SBS/연합뉴스/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photo SBS/연합뉴스/우크라이나 대통령실

21세기 최악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

 

아비규환의 일대 위기에서 우크라이나를 구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 영웅, 아니 세계인의 가슴에까지 각인됐다.

 

젤렌스키는 14(현지시간) 러시아에 뺏겼다 최근 수복한 하르키우주에서 열린 국기 게양식에 참석했다.

 

냉혈의 독재자, 살육의 도살자 푸틴을 겨냥한 사자후로 지구촌을 달궜다.

 

더 타임즈는 우리 시대의 게티스버그 연설이라고까지 극찬했다.

 

시적이고, 반항적이면서도 단호한 감정을 담은 이 명연설은 수십 년간 길이 읽힐 것...”.

 

연설문은 젤렌스키가 텔레그램에 게시해 즉각 지구촌 곳곳에 전파됐다.

 

조선닷컴이 우리말로 번역한 전문과 CNN의 영문 번역문을 소개한다.

 

<1>우리말

 

너희는 아직 우리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는 아직 너희가 우리를 겁먹게 하고, 무너뜨리고, 우리의 양보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너희는 아직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무얼 위해 살아가며, 우리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가?

 

지금부터 내 입을 잘 봐라. 너희가 없으면 가스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빛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물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너희가 없으면 음식도 없다고? 너희 없이 살겠다.

 

추위, 배고픔, 어둠, 목마름조차 너희가 말하는 우정과 형제애만큼 무섭고 끔찍하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는 기어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가스, , , 음식을 가질 것이다그것도 너희 없이!

 

<2>영문

 

Do you still think that we are ‘one nation?’ Do you still think that you can scare us, break us, make us make concessions?

 

You really did not understand anything? Don’t understand who we are? What are we for? What are we talking about?

 

Read my lips: Without gas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light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water or without you? Without you. Without food or without you? Without you.

 

Cold, hunger, darkness and thirst are not as scary and deadly for us as your ‘friendship and brotherhood’. But history will put everything in its place. And we will be with gas, light, water and food ... and WITHOUT you!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이라는 인기 드라마로 상한가 인기로 떴다.

드라마 '국민의 종' photo 나무위키 
드라마 '국민의 종' photo 나무위키 

그 한편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그는 평범한 역사 교사로 연기했다.

 

그가 교실에서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한 학생이 찍어 유튜브에 올린다.

 

그 영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아 주인공은 전국적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유튜브 한편으로 일약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다니 참말로 드라마다.

 

드라마 주인공은 시종 우크라이나의 정치 현실을 꼬집고 비틀고 풍자한다.

 

대통령 젤렌스키는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의 개혁에 매진한다.

 

드라마에 나온 배우들의 연기와 구성, 연출력까지 완성도가 높은 수작이다.

 

게다가 배꼽 잡게 만드는 유머 코드도 빵 터지게 만드는 수준급이니...

 

돌덩이같이 무딘 감성의 소유자 빼곤 웃음보가 터지는 걸 막을 수 없다.

 

드라마 속의 냉혹한 독재자 푸틴도 우스꽝스럽게 짧게 나와 눈길을 붙든다.

 

드라마대로 젤렌스키가 푸틴의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최대의 정적일 줄이야...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즐겁게 보는 동안엔 이런 광경은 상상조차 못했을 거다.

 

진솔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웃고 울리는 젤렌스키의 연기와 실제 모습이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참 소박하고 멋진, 소신과 용기가 넘치는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드라마 한 편으로, 일기일회(一期一會)  대통령에 뽑혔다.

 

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드라마 속 젤렌스키의 말과 행동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듯, 연기 연 실제 실의 '연즉시실, 실즉시연'이다.

 

정말 잘 만든 수작이니, 독자제현께서도 한번 보시고 즐감 바랍니다.

 

넷플릭스가 드라마 전편을 편집한 것도 다 젤렌스키의 인기 덕분이다.

 

러시아 침공 이후 측근의 도피 권유를 물리치고, 목숨을 걸고 분투한 젤렌스키의 용기를 높이 산 덕분이다.

 

21세기 최악의 전쟁, 이 드라마처럼 우크라이나가 침략자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승전하길 빌어마지 않는다.

 

악마와 같은 푸틴에게 하늘의 저주가 내리길...

 

용기와 감동의 젤렌스키에겐 은총과 축복을...

 

이만 총총.(계속)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기록화 photo 나무위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기록화 photo 나무위키

#뱀발...Gettysburg Address

 

1863 1119게티즈버그 전투의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272 단어, 3분여 짧은 연설을 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로, 가장 많이 인용된 명연설이다.

 

연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당시 '도대체 왜 흑인 때문에 싸워야 하나' 라는 회의론이 많았다.

 

특히 게티즈버그 전투 이전, 북부는 전체적인 전황의 우세한 구도에도 각개 전투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북부인은 희생자는 늘고 전황은 지지부진하자 불만이 높아갔다.

 

게티즈버그 전투의 기록적인 승리를 계기로 여론 뒤집기에 나선다.

 

링컨은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알리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기념비적인 노예해방 선언과 게티즈버그 명연설은 그런 산물이다.

 

노예해방 선언은 대외를 겨냥한 외교적 목적에 방점을 뒀다.

 

노예제를 지키는, 명분 없는 남부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에서다.

 

외국의 지원이나 개입을 차단해 전쟁을 조기에 끝내려 했다.

 

역사적 게티즈버그 연설은 단연 북부인을 겨냥한 내부용.

 

먼저 격전지에서 죽어간 병사들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숨진 병사들이 왜 목숨을 걸었는지, 그 정당성을 말한다.

 

북부 내 회의론을 명분론으로 돌려놓으려는 의도에서다.

 

이 기념비적 연설의 끝 대목은 회자된다.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고딩만 나와도, 아니 중딩이라도 이 문구는 알 거다.

 

참으로 이 명문구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고딩 정치와 법 교과서에는 인민 대신 '시민'으로 나온다.

 

다른 사전 등에는 국민으로 번역돼 있기도 하다.

 

링컨이 쓴 게티스버그 연설문 원본은 남아 있지 않다.

 

남은 필사본들은 몇 개 단어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간결하고 명료한 구조로 지금껏 명연설의 선구로 칭송받는다.

 

하지만 링컨이 살던 때는 달랐다.

 

어렵게, 길고 복잡하게, 수사도 화려한 게 추앙받던 시대였다.

 

팩트를 전달하는 신문조차 만연체 범벅이었으니까 말 다했다.

 

기자들도 집 한 채가 불타서 내려앉았다고 결코 하지 않는다.

 

대신 "큰 화재로 구조물이 전소했다"라고 써야 폼 난다고 여긴다.

 

 

또한 "사람들이 떼 지어 구경왔다"가 아니다.

 

"대규모 인파가 군집해 목격했다"는 게 당시의 작법이었다.

 

케네스 크밀이 쓴 '민주적인 웅변(Democratic Eloquence)'에 잘 나온다.

 

당대의 명연설, 명문장이란 것들에는 중문에 복문은 기본이다.

 

온갖 수식어로 군더더기를 잔뜩 붙여놓고 만연체로 질질 끈다.

 

주요한 행사 때 연설은 평균이 2시간가량이라고 한다.

 

문장가 빌 브라이슨의 표현이 적확하다.

 

"당시 여덟 마디를 할 수 있는데, 두 마디만 하고 만다는 건 꿈조차 못 꿀 일이다."

 

봉헌식 때 링컨보다 먼저 연설한 에드워드 에버렛도 그랬다.

 

"베이컨 경은 '명예로운 통치의 수준을 정확하게 정렬'하면서 '국가와 연합의 창시자'를 최고로 쳤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본성, 열정, 개인의 의견, 가족, 혈통, 부족 사이의 경쟁, 기후와 지리적 위치의 영향,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평화와 전쟁의 사건들에 담긴 부조화의 요소들, 그처럼 양립하지 않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잘 정비되고 번영하는 강력한 국가를 성립하려면, 그것도 한 번의 노력이나 한 세대 안에서 그것을 달성하려면 사람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할 것입니다...'

 

"Lord Bacon, in 'the true marshalling of the sovereign degrees of honor,' assigns the first place to 'the Conditores Imperiorum, founders of States and Commonwealths'; and, truly, to build up from the discordant elements of our nature the passions, the interests, and the opinions of the individual man, the rivalries of family, clan, and tribe, the influences of climate and geographical position, the accidents of peace and war accumulated for ages, to build up from these oftentimes warring elements a well-compacted, prosperous, and powerful State, if it were to be accomplished by one effort or in one generation would require a more than mortal skill...' <게티즈버그 연설>, 에드워드 에버렛, 1863.11.19

 

한 문장에 등장하는 엄청나게 긴 중문 복문의 연속이다.

 

마치 한 페이지를 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우리 판결문 같다.

 

복잡한 구조, 삼천포로 빠진 설명과 문학적 암시, 인용 투성이다.

 

당시 꼴불견의 연설 문장들은 다 그랬다.

 

에버렛은 명연설가로, 메사추세츠 주지사와 주영 미국대사, 국무장관, 하원 및 상원의원을 역임했다.

 

남북전쟁 당시 그는 70대로 은퇴한 노익장이었다.

 

링컨 연설 직전, 복잡한 문장 1500여 개의 난삽한 연설문을 초겨울 쌀쌀한 날씨에도 두 시간 동안 읽었다.

 

전문의 단어 수는 13500여 개나 된다고 한다.

 

두 시간 동안 추위를 견디며 박수까지 보낸 청중들도 대단했다.

 

당시 청중들은 연설장에 몇 시간 동안을 걷거나 말을 타고 왔다.

 

그러니 오히려 연설이 짧으면 "우리를 무시하는가?"라며 화를 냈다.

 

네 시간 뒤에야 링컨은 추위에 떨고 배고픈 15000 앞에 섰다.

 

켄터키 출신으로, 근엄한 동부식 말투 대신 직설적이고 다채로운 서부의 말투를 끝내 못 버린 링컨이었다.

 

그는 '헬로!(Hello!)'라고 하지 않고 '하우디!(Howdy!)'라고 인사했다.

 

링컨은 'out yonder''stay a spell'처럼 사교계에선 기피하는 구어체를 남발했다.

 

일상에서 쓰던 비속어 수준 표현들을 대화 때 거리낌 없이 내뱉곤 했다.

 

'세련된' 워싱턴 정치인들은 링컨의 말투를 송충이 보듯 넌더리냈다.

 

오죽하면 그의 정적들은 비쩍 마르고 수염까지 기른 그의 외모를 비하했다.

 

통속적 화제나 좋아하고 예법까지 어겨 워싱턴 사교계의 기피인물이었다.

 

그래서 나온 링컨의 별명은 '고릴라'였다.

 

당시 링컨은 '망원경이라도 끄집어내는 것처럼 어색한 동작'으로 일어났다고 한다.

 

안경을 고쳐 쓴 뒤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높은 목소리로 '불안하게'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대부분 단음절 단어의 연속이다.

 

당시로는 짧고 축약형, 직설적 문장 10개가 전부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연설하는 사진은 단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사진사가 '드디어 대통령 차례네. 연습 삼아 한번!' 워밍업을 하려는데...

 

'어라 저 양반 벌써 끝냈나?' 라고 땅을 쳤다는 거다.

 

연설 직후 사람들에 싸여 식별이 힘든 단 한 장의 사진만 있다.

 

사진사들은 링컨이 연설을 끝내고 앉을 때까지 카메라만 만졌다.

 

그의 짧은 연설에 대해 당시 반응은 신랄했다.

 

'외국의 지성인들에게 미합중국 대통령이라고 소개를 해야 할 사람의 어리석고 밋밋하고 싱거운 연설...그 자리에 있던 모든 미국인들의 뺨이 수치로 물들었다.'(The Chicago Times)

 

"나는 실패했습니다. 정말로. 내가 연설에 대해 할 말은 그것뿐..."(Lincoln' wording to Everret)

 

에버렛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각하께서 어제 봉헌식에서 정말 간결하고 적절하게 각하의 생각을 표현한 데 대해 진심으로 찬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어제 장장 2시간에 걸쳐 한 제 연설이, 각하께서 2분 간 정확하게 표현한 봉헌식의 의미에조금이라도 그 근처에라도 갈 수 있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없겠습니다."

 

링컨은 헌사만 얘길 들었지, 연설은 15일 전에 촉박하게 부탁받았다.

 

바쁜 전시 대통령으로 연설문 작성할 여유나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더욱이 주 연설자는 에버렛이었지 링컨이 아니었다.

 

지금에 와서야 모범적 연설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링컨 연설, 짧고 분명하고 감동적이라는 그 평가조차 뱀발이다.

 

당시 에버렛의 연설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겸양이든 선견이든, 에버렛이 링컨에게 바친 찬사는 적중했다.

 

게리 윌스의 평가가 돋보일 뿐이다.

 

"명료한 단음절을 따라가는 첫 소용돌이가 특징이다. 그의 연설은 특별한 리듬이 있으며, 짧지만 굵고 인상적이다."

 

링컨의 취임식 연설의 일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가 작성한 '시대의 걸작'인 초안.

 

링컨이 다듬은 시대를 초월해 남은 최종 취임사 한 대목을 보자.

 

'우리는 이방인이나 적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되며 어디까지나 같은 국민이고 형제이다.'(수어드)

 

'우리는 적이 아니라 친구이며, 결코 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링컨)

 

그런 링컨조차도 한 문장에 평균 30단어는 썼다. 참 긴 문장이다.

 

그건 약과다. 워싱턴 정치인들은 평균 50~60개의 단어를 썼다.

 

게티스버그 연설문은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에 있다.

 

바로 링컨 좌상 좌측, 기념관 건물 안 벽에 새겨져 있다.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 we can not consecrate - we can not hallow - this ground.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87년 전우리 선조들은 이 대륙에 자유의 정신으로 태어나고 만인은 신 아래에서 누구나 평등하다는 신념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나라가, 아니 이러한 정신과 신념으로 잉태되고 헌신하는 어느 나라인지, 과연 오래도록 굳건할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인 거대한 내전에 휩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전쟁의 거대한 싸움터인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바로 그 싸움터의 일부를,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바쳐 바로 그 나라를 살리고자 한 영령들의 마지막 안식처로 바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이 헌정은 지극히 마땅하고 옳은 실천입니다.

 

그러나 더 큰 맥락에서 보자면, 우리는 이 땅을 그들에게 바칠 수도, 지을 수도, 신성화할 수도 없습니다. 여기서 싸웠던 용맹한 전사자와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에, 보잘 것 없는 우리의 힘으로 더 보태고 뺄 것은 없습니다. 세상은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한 말들은 별로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이곳에서 이뤄낸 것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이 자리에서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이, 여기서 싸웠던 그분들이 그토록 고결하게 전진시킨 미완의 과업을 수행하는 데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그 위대한 사명, 즉 고귀한 순국선열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헌신했던 그 대의를 위하여 더욱 더 헌신해야 하고, 이분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겠다고 이 자리에서 결단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 아래서 우리에게 자유가 새롭게 임하기를 빌 뿐만 아니라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가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에 우리를 바쳐야 합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