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은 큰 공을 세운 무신에게 주는 시호

#장면 1

4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이다.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음력 38일에 태어났다. 그 해 양력으로는 428일이었다. 그래서 양력 기준 428일을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로 기리고 있다. 올해가 탄신 475주년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최대 공신이다. 그러나 충무공은 불행하게도 내국인보다 외국인에게 더 높이 평가받았다. 충무공은 살아 생전에 끊임없이 중상모략에 시달렸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것에 대해 타살을 가장한 자살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고뇌에 찬 그의 생애를 방증한다.

충무공에 대해 높이 평가한 외국인으로 임진왜란 때의 명나라 수군제독 진린(陳璘)을 들 수 있다. 진린은 처음에는 충무공을 작은 나라의 장수라며 얕보고 함부로 대했으나 충무공으로부터 목숨을 구원 받은 이후로는 태도가 180도 바뀌어 충무공을 존경하며 따랐다.

진린은 사람들에게 “이야(李爺)는 하늘이 내린 장군”이라고 말했다. ()는 윗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으로 우리말로는 ‘어르신’ 정도의 어감이다. 진린은 나라에 낸 보고서에서 “이순신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과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이 있다”고 극찬했다.

경천위지는 ‘천하를 잘 다스린다’는 뜻이다. ‘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다’는 뜻의 보천욕일은 ‘어마어마한 공적’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중국 신화에서 비롯됐다.

근세 이래 우리를 가장 괴롭힌 숙적(宿敵) 일본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이순신을 잊지 않고 존경했다. 일본에서 ‘군신(軍神)’으로 존경받던 러일전쟁 때 일본 해군제독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러일전쟁 전승축하연에서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좌중을 경악케 했다.

문답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넬슨과 당신을 비교하면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넬슨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비슷한 수준의 함대로 싸워서 이겼다. 그러나 나는 러시아 발틱함대의 3분의 1 규모로 싸워 이겼다.(도고 자신이 더 낫다는 뜻)

“조선의 이순신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내 함대를 갖고 있었다면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다.

1905년이면 일본이 한국을 사실상 식민지로 다스리던 시절이다. 식민지의 위인을 세계적인 위인보다 더 윗 반열에 올려놓은 도고의 발언은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세계적인 위인인지 짐작케 하고, 이런 훌륭한 조상을 비방하고 잊어버렸던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장면 2

우리 사회에서 충무공과 이순신은 등식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충무공`=`이순신’은 맞는 개념인가? 정답은 ‘아니오’다. 우리 역사에서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뿐만 아니라 여러 명이 있기 때문이다. 충무(忠武)는 큰 공을 세운 무신에게 나라에서 내리는 시호(諡號), 조선시대에만 9명의 충무공이 있다.

출생 연도 순으로 살펴보면 조선 개국공신 조영무(趙英武·?~1414)가 조선 최초의 충무공이다. 조선 초기 비운의 무신 남이(南怡·1441~1468) 장군과 임진왜란 때 진주목사를 지내다 순직한 김시민(金時敏·1554~1592) 장군도 충무공이다. 충무공 정충신(鄭忠信·1576~1636) 장군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워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김응하(金應河·1580~1619) 장군은 남의 나라 전쟁터에 파병돼 전사한 비운의 무장이다.

세간에 비교적 덜 알려진 충무공도 여럿 있다. 조선 전기의 왕족인 구성군 이준(·1441~1479)은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해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이수일(守一·1554~1632)과 구인후(具仁垕·1578~1658)도 시호가 충무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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