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을 먹고 자라는 회사

Dr.G 이주호 대표 제공
Dr.G 이주호 대표 제공

첫 회사에서 처음 외환업무를 맡은 어느 날이었습니다. 선물환 계약을 위해 거래은행 딜링룸에 전화를 했습니다. 신호가 "뚜우- "하고 가는 동안 100만불짜리 계약을 한다는 사실에 입술이 바짝 마를 정도로 긴장되있습니다.

드디어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외환딜러의 목소리 " OO은행 딜링룸입니다" . 저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 100만불 Buy 하려고 하는데요.."

은행 담당 딜러는 늘 "Sell(외화를 팔고 원화를 사는)"하던 회사에서 반대계약을 하는 게 의심스러웠던지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Buy 맞나요? 그러면 은행이 팔고 회사가 삽니다. 맞습니까?" 당황한 나는 얼떨결에 "네 맞아요" 하고 전화수화기를 얼른 내려놓았습니다. 내가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도 잘 몰랐습니다.

잠시 후에 은행에서 전화가 와서 팀장님을 바꾸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바꾼 팀장님, " , 우리 직원이 잘못 말했나보네요." 순간 뭔가 잘못 되었음을 직감한 저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팀장님은 나보고 전화를 다시 해서 반대계약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전화를 하면서 로이터화면을 보니 환율은 이미 30원이 넘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당시 제 연봉의 두 배 가까운 3천만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멋지게 첫 외환딜링을 해보려던 저의 기대는 그렇게 무참히 무너져내렸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제 등을 두드리며 누군가 말했습니다. "괜찮아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다음에 잘해서 만회해라. 주호 넌 잘 할꺼다" 뒤돌아보니 팀장님이 씨익 웃고 있었습니다 .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게 믿어주는 팀장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다음엔 정신차리고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이직한 회사에서 팀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에 부가세업무를 맡고 있던 팀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제게 왔습니다.

"팀장님....오늘 부가세 신고 마감일인데 깜빡하고 신고를 못했어요..어떡하죠?" 울음을 떠트리기 직전인 팀원에게, "OO, 일단 세무서 담당자랑 통화해서 방법을 찾아보자. OO이가 직접 전화해볼래?“

긴장된 표정으로 세무서에 전화를 하던 직원의 얼굴이 햇살처럼 환해집니다. 전화를 끊더니, "팀장님, 일단 전산 신고 지금 하고 서류는 내일 아침까지 가져오래요." 언제 그랬냐는듯 신이 나서 보고합니다.

" 이야, 그래? 잘 됐다. 잘 했다. OO. OO 덕분에 가산세도 안 물게 되었네. 짱인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었습니다.

어려운 전화를 용기를 내어 한 직원이 대견했습니다. 업무에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5년 전 팀장님께 졌던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사들은 말합니다. 부하직원에게 일을 믿고 맡기고 싶어도 불안해서 못 맡기겠다고. 후배들은 말합니다. 우리 상사는 팀원을 못 믿는다고.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울 때 한 발짝도 못 가서 넘어지기를 수없이 반복합니다. 그 때마다 부모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합니다. 두 발짝만 떼면 환호성을 지르고 발을 둥둥 구르며 좋아합니다.

회사에 인재가 없다고 합니다. 직원들이 주인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아닙니다. 그들은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못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직원들이 서툴고 실수하더라도 끝내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속 관심있게 지켜봐주어야 합니다. 넘어지면 일어나라고 박수를 쳐주고, 걷기 시작하면 잘한다고 응원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믿어주는 회사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훌륭한 인재로 훌쩍 커 있을 것입니다.

유능한 인재를 확보해서 그들에게 도전의 기회를 주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주어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과감한 도전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가 탄생하는 법입니다.

사람과 조직은 관용을 먹고 자라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