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는 河內, 베트남의 모든 지명은 한자말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베트남과 수교한지 28주년이 되는 해다.

현대 한국인에게 베트남은 연령대에 따라 월남전(베트남전)의 나라’, ‘베트남 신부의 나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베트남의 일부일뿐 베트남의 실상은 이보다 훨씬 거대한 나라다.

인구만 해도 약 9734만 명(2008년 기준)으로, 세계 15위의 인구대국이다. 베트남인들은 스스로 1억 명이라고 얘기한다. 국토면적도 한반도의 약 1.5배이며 남한의 약 3.5배나 된다. 대국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이 나라는 개혁개방 후 눈부신 경제성장을 거듭해 동남아의 용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이쯤 되면 왜 우리 국민이 베트남을 알아야 하는지 납득이 될 것이다. 최근 2~3월 코로나19사태 때 베트남이 우리에게 취한 행동 때문에 베트남에 대한 악감정이 생기고 있으나 이럴수록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된다. 베트남은 대한민국이 동남아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나라인 탓이다.

베트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베트남도 잘 알아야 한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하나로 한자(漢字)를 통해서 베트남을 이해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베트남은 지역적으로는 동남아에 속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자문화권이어서 동아시아에 속하는 측면도 있다. 지금 베트남의 모습은 한국인에게 다소 낯설지만 전통시대의 베트남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많았다. 우선 명대나 청대의 중국의 수도 북경(北京·베이징)에서 조선과 월남(越南·베트남의 한자 표기) 사신이 만났을 때 어떻게 의사소통을 했을까? 답은 한자다. 이들은 말은 안 통해도 필담을 통해 자유자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베트남 관리들도 한학(漢學)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베트남도 과거제도가 있었고 유학을 배우는 국립대학 격인 국자감이 있었으며 공자를 배향하는 문묘(文廟)가 있었다. 지금도 하노이에는 문묘(반미에우)가 남아 있다.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은 한화(漢化)정책을 펴서 신라의 관직을 중국식으로 바꾸고 토박이말로 돼 있던 지명을 한자어로 바꾼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전통시대 베트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화정책을 펴서 관직과 지명을 한자어로 바꿨다.

베트남이 한자와 얼마나 밀접한 나라였는지 그 흔적을 살펴보자. 우선 베트남이라는 국호부터가 월남(越南)의 베트남식 한자발음이다. 또 우리나라의 도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행정단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성()이다. 현대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인 호찌민(1890~1969)胡志明이라는 한자이름이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호찌민이 어릴 때까지만 해도 베트남 사람들은 한자로 이름을 지었다. 호찌민이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감명 받아 정약용을 사숙했다는 이야기도 호찌민이 한문 원서를 해독할 수 있는 세대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참고로 베트남에서는 호찌민 세대만 해도 이름을 한자로 지었다. 1954년 비엔디엔푸 전투의 영웅인 보 구엔 지압(1911~2013) 장군은 한자 이름이 武元甲이다. 그러나 요즘 베트남인들은 한자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

우리나라 지명을 대부분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것처럼 베트남도 대부분의 지명이 한자어에서 유래했다. 다만 베트남은 우리로 따지면 한글전용정책을 펴서 프랑스 선교사가 만들어준 베트남 문자로만 표기한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한자로 河內. 하노이는 강과 호수로 둘러싸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자는 우리 한자음과 발음이 같은 이고 의 베트남 발음이 노이. 우리나라의 인천에 해당하는 항구도시 하이퐁은 한자로 海防이다. 하이퐁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북폭(北爆)을 많이 받아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인들에게도 인기 높은 세계적 관광지 하롱베이는 한자와 영어가 합쳐진 말이다. 베이는 ()’을 뜻하는 영어인 반면 하롱은 下龍의 베트남 한자음이다.

이뿐 아니다. 베트남어의 약 60%는 한자어다. 한자말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말과 비슷한 셈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두 자로 된 한자말 중 웬만한 것들은 베트남어에 다 있고 발음만 다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면 승리(勝利)는 베트남 한자발음으로 탕로이. 하노이의 호텔 중에 탕로이 호텔이 있는데 승리 호텔인 셈이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인들은 우리 군대를 따이한이라 불렀다. ‘따이한大韓의 베트남 한자발음을 딴 것이다. 우리는 대한 국군이라고 했는데 베트남인들은 그중에서 대한만 따서 이렇게 불렀다.

이 원고를 쓰는 시점이 부처님오신날(2020년은 430)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어서, 불교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베트남 출신의 승려로 틱낫한(1926~)이라는 세계적인 스님이 있다. 틱낫한은 달라이 라마와 함께 생불(生佛)로 불리며 평화운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틱은 승려를 뜻하는 ()’의 베트남 한자발음이다. 따라서 틱낫한은 낫한 스님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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