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86이지만 586이 혐오스럽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586이지만 586이 혐오스럽습니다. 세상 정의는 다 짊어진 듯 외치지만, 정작 행동은 이전 세대와 다름없이 탐욕스럽습니다.

저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정자가 난자로 향할 때 구수회의 끝에 우리 중에서 가장 바르고 튼실한 정자가 수정하게 하자고 결정합니까? 정자는 그저 본능’(한데 정자에게 본능이라는 게 있는 겁니까?) 혹은 존재 목적에 맞게 난자에게 향하는 것일진데...

탐욕, 혹은 자기만을 생각함은 인간에게 본원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세상이 탐욕 혹은 자기 생각으로만 가득하면 세상이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될 터이니, 그 탐욕을 법으로 절제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그래서 저는 공자와 맹자 예수 석가, 혹은 도덕으로 돌아감을 외치는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 외침을 하는 이들의 행동을 뜯어보면 대개 저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더군요. 제가 도덕으로 돌아감, 혹은 도덕에 바탕한 인치(人治)’보다는 법치를 믿는 이유는 이런 데 있습니다.

갱년기가 온, 혹은 지난 탓인지 이처럼 세상에 불만이 많아졌습니다. 한데, 어제 노래 한 곡 들으면서 기분이 확 풀렸습니다.(이런 업 앤 다운도 갱년기의 전형적 증상인가요?) ‘불협화음이라는 노래 덕입니다.

AKMU photo YG엔터테인먼트
AKMU photo YG엔터테인먼트

이 노래는 쇼 미 더 머니라는 TV 힙합 경연 프로그램에서 지난 금요일 발표됐습니다. ‘머드 더 스튜던트라는 경연 참가자가 AKMU(악동뮤지션)의 이찬혁 씨를 프로듀서로 만나 만든 노래입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요즘은 피처링이라고 하나요?) 이수연 씨는 프로듀서 이찬혁 씨의 친동생으로, 수연 씨와 찬혁 씨는 앞서 말한 악동뮤지션 멤버이지요.

노래 가사는 대략 이렇습니다.

나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불협화음이다. 아니다. 너는 그저 다른 것이다. 동그라미 사이에 네모 같은... 그것도 분명 작품이다.

노랫말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두발 규제를 벗어나자마자 단발병(군대 징집을 비유하는 것이겠지요?)/

동심이 없어진 자리에 생긴 환상통(취업 상황, 주택난 등을 생각해보시기를.)/

(중략)

명품보다 동묘 앞 할아버지 할머니 패션(이 더 좋다.)

역시 갱년기여서이겠지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이 나는 한편, 희망도 생깁니다.

그래, 너희들이 이끌 세상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어제, 모 정당 후보는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5·18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면 처벌하는 역사왜곡단죄법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한데 저기서 말하는 왜곡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자기들 입맛과 맞지 않으면 왜곡인가요? 저 사람들, 1980년대 이후 그 누구보다도 사상의 자유를 외쳤던 사람들일 터인데.

하긴, 21세기 중반기 이후를 이끌 미래 세대의 지적 테스트를 위한 수능에서 철 지난 헤겔의 절대정신과 절대 진리로서의 이념을 여전히 유효한 지식인 양 국어 비문학 지문으로 내는 이들이 586세대입니다.(22 수능 국어 4~9번 문제의 지문 한번 보십시오.)

대학 시절, 제대로 된 공부 한번 하지 않고, 하고한날 레닌이나 마르크스, 그나마 한발 더 나아가면 그람시의 저작 정도를 읽고 정치 투쟁을 위한 전략 전술이나 공부했던 이들이니 자신들이 한번 움켜잡은 권력을 놓기가 싫겠지요. 기실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것인지도 모르고...

나도 586이지만, 언제부턴가 일부 586들의 이야기나 글을 접하면 쉰내를 넘어 역겨움이 밀려왔습니다. ‘말뿐인 도덕주의자들은 망해가던 조선에도 숱하지 않았는지요.

그런 와중에 이런 노래를 들은 것입니다.

나도 동의합니다. 귀하들은 불협화음이 아닙니다. 단지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부탁드립니다. 제발 나이 들어 당신들 선배들이 내내 그랬던 것처럼 오만한 쉰내는 내지 마십시오. 못난 선배로서 감히 부탁합니다.

노래 한번 들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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